페드로 아르멘다리스(Pedro Armendáriz, 1912년 5월 9일 ~ 1963년 6월 18일)는 멕시코 출신의 배우이다. 본명은 페드로 그레고리오 아르멘다리스 헤이스팅스(Pedro Gregorio Armendáriz Hastings)로, 1940년대와 1950년대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영화 배우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출생과 성장 배경
아르멘다리스는 멕시코시티에서 멕시코인 아버지 페드로 아르멘다리스 가르시아 콘데와 미국인 어머니 아델라 헤이스팅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사망한 뒤 형제와 함께 텍사스주 러레이도에 있는 외삼촌의 보호를 받으며 성장했다. 이후 캘리포니아에서 수학하여 캘리포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학교(Cal Poly)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했다. 대학 재학 중에는 학생 신문과 연감 편집, 연극 활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경력
학업을 마친 후 멕시코로 돌아와 철도 회사, 관광 가이드, 잡지 기자 등 여러 직업을 거쳤다. 이후 영화 감독 미겔 사카리아스에게 발탁되며 1935년 첫 영화에 출연했다. 감독 에밀리오 페르난데스와의 만남은 그의 경력에 전환점이 되었으며, 두 사람은 《마리아 칸델라리아》(1943)를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협력했다. 에밀리오 페르난데스의 지도 아래 아르멘다리스는 강인하고 남성적인 이미지의 인물, 원주민, 농민, 혁명가 역할을 주로 맡으며 멕시코 민족주의적 영화의 대표적인 배우로 자리 잡았다. 특히 판초 비야 역을 여러 차례 연기했다.
배우 돌로레스 델 리오와 함께 멕시코 영화의 가장 유명한 커플 가운데 하나로 꼽히며, 《마리아 칸델라리아》는 1946년 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황금종려상의 전신)를 수상하는 등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에나모라다》(1946)에서는 마리아 펠릭스와도 호흡을 맞췄다.
1940년대 후반에는 존 포드 감독의 작품에 출연하며 할리우드에 진출했다. 《도망자》(1947), 《아파치 요새》(1948), 《쓰리 가드파더》(1948) 등 존 포드 감독의 세 작품에 출연했으며, 존 휴스턴 감독의 《위 워 스트레인저스》(1949)에도 출연했다. 이 밖에 《더 컨커러》(1956), 《다이앤》(1956) 등 할리우드와 유럽 영화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멕시코에서는 루이스 부뉴엘 감독의 《엘 브루토》(1953)에도 출연했다.
그의 마지막 작품은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두 번째 영화 《007 위기일발》(From Russia with Love, 1963)로, 본드의 조력자 케림 베이 역을 맡았다. 당시 그는 암 말기 상태였으며, 촬영 말기에는 건강이 악화되어 일부 장면은 스턴트맨(테런스 영 감독)이 대역을 소화했다. 영화 개봉 약 4개월 전인 1963년 6월 18일, 그는 로스앤젤레스의 병원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향년 51세였다.
수상 경력
아르멘다리스는 멕시코의 대표적인 영화상인 아리엘상에서 남우주연상 후보에 여섯 차례 올랐고, 그중 두 차례(1948년 《진주》, 1952년 《솔레다드의 숄》) 수상했다.
사생활
그는 배우 카르멜리타 보어와 결혼하여 슬하에 아들 페드로 아르멘다리스 주니어(1940~2011)와 딸 카르멘을 두었다. 아들 페드로 아르멘다리스 주니어 역시 배우가 되어 멕시코와 미국 영화계에서 200편이 넘는 작품에 출연했으며, 《살인 면허》(Licence to Kill, 1989)에도 출연했다.
사망 관련 논란
아르멘다리스는 1956년 유타주에서 촬영된 영화 《더 컨커러》 촬영 당시 인근 네바다주에서 미국 정부가 실시하던 대기 중 핵 실험의 영향권에 노출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당 작품의 촬영 인력 약 220명 가운데 91명(약 41%)이 이후 암에 걸렸고, 그중 46명이 암으로 사망한 것으로 보고되었다. 아르멘다리스는 이후 목(경부) 부위에 암이 발견되었으며, 말기 판정을 받았다. 다만 그의 암이 당시 핵 실험 낙진에 직접적으로 기인했다는 점은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으며, 이는 영화 촬영지의 환경과 관련한 널리 알려진 논란 중 하나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