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드로 루이스 보이텔(Pedro Luis Boitel, 1931년 5월 13일 ~ 1972년 5월 25일)은 쿠바의 시인이자 반체제 인사이다. 쿠바 마탄사스 주 호베야노스에서 태어났으며, 아바나 대학교에서 수학하면서 라디오 기술자로도 일했다. 1950년대에는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권에 반대하여 베네수엘라로 망명, 로물로 베탕쿠르와 협력하여 해적 방송국을 운영하며 마르코스 페레스 히메네스 군사 정권 타도를 지원했다.
쿠바 혁명 이후 쿠바로 돌아와 아바나 대학교에서 학업을 재개했으며, 1959년 아바나 대학교 학생 연맹(FEU) 회장 선거에 출마하여 7월 26일 운동의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피델 카스트로가 직접 개입하여 보이텔의 당선을 저지했다. 1961년 국가 전복 음모 혐의로 10년형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 10년의 형기가 만료된 후에도 석방되지 않았으며, 수감 기간 중 고문과 구타를 당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주인권위원회는 쿠바 정부가 보이텔을 대우함에 있어 미주인권선언 제1조를 위반했다고 판결했다.
1972년 4월 3일 단식 투쟁을 선언했으며, 53일간의 단식 끝에 의료 지원을 받지 못한 채 1972년 5월 25일 아바나의 교도소에서 사망했다. 그의 시신은 아바나의 콜론 묘지에 무덤 표시 없이 매장되었다. 그의 마지막 나날은 시인 아르만도 바야다레스의 저서를 통해 알려졌다.
사후 그의 이름을 딴 '보이텔 자유상'(Boitel Freedom Prize)이 제정되어 쿠바 내 민주화 운동 인사들에게 수여되고 있다. 쿠바 망명 사회에서는 그를 '쿠바의 보비 샌즈'라고 부르며 존경하고 있으며, 쿠바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 인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