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킷 보트(packet boat)는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강, 운하, 해상에서 우편물, 화물 및 여객을 정기적으로 운송하기 위해 설계된 중형 선박이다. 정기 운항 서비스를 특징으로 하였으며, 18세기에는 영국과 그 식민지 사이의 대서양 항로에서 사용되어 패킷 무역(packet trade)이라고 불렸다.
어원
"패킷(packet)"이라는 용어는 원래 긴급 배송을 위한 중요한 서신이나 귀중품의 소포를 의미했으며, 이러한 우편물 소포를 운반하는 배라는 의미에서 패킷 보트라는 명칭이 유래하였다. 프랑스어의 "paquebot" 역시 영어의 "packet boat"에서 파생되었으나, 현대 프랑스어에서는 대형 원양 정기선을 의미하는 방향으로 의미가 변화하였다.
역사
패킷 선박은 17세기부터 유럽 연안 우편 서비스에서 널리 사용되었으며, 점차 최소한의 여객 시설(취사 공간, 식수, 취침 공간)을 갖추게 되었다. 1724년 대니얼 디포는 소설 《록사나: 운 좋은 정부》에서 패킷 보트에 대해 언급하였다. 18세기 중반 영국 국왕은 15척의 패킷 선박을 운용하여 대륙 및 아일랜드와의 주간 패킷 서비스를 유지하였다. 1789년 뉴사우스웨일스 식민지에서 최초로 건조된 선박이 로즈 힐 패킷(Rose Hill Packet)이었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운하 패킷 보트
미국의 운하 패킷 보트는 일반적으로 폭이 약 14피트(4.3m)로 좁았으며, 길이는 70~90피트(21~27m)에 달했다. 1825년 뉴욕주에 이리 운하(Erie Canal)가 개통된 이후 여객 수요가 급증하였으며, 최대 60명의 승객을 수용할 수 있는 선실 공간을 갖추었다. 이들 보트는 돛이 아닌 말이나 노새 팀에 의해 운하를 따라 견인되었다. 육상 여행에 비해 이동 시간을 절반으로 단축하고 훨씬 편안한 여행 수단을 제공하였다.
대서양 패킷선
패킷선은 20세기 원양 정기선의 전신으로, 미국과 유럽 항구 사이를 정기적으로 운항한 최초의 선박이었다. 최초의 회사인 블랙 볼 라인(Black Ball Line)은 1818년 1월 1일 운항을 시작하여 뉴욕과 리버풀 사이를 4척의 선박으로 매월 운항하는 서비스를 제공하였다. 이후 레드 스타 라인(1821년), 스왈로우테일 라인(1822년) 등이 뒤를 이었다.
우편 증기선
19세기 후반부터는 증기 동력의 우편 증기선(mail steamer)이 도입되어 해양 및 도서 간 우편물을 운반하였다. 대부분의 우편 증기선은 우편 서비스 수익만으로 운항 비용을 충당할 수 없었기 때문에 여객이나 화물도 함께 운반하였다. 이러한 증기선으로 운반되는 우편물은 파케보(paquebot) 우편물로 알려졌으며, 1891년 빈에서 열린 만국 우편 연합(UPU) 회의에서 규정이 명시되었다.
상업과 저널리즘에서의 역할
19세기 상업에서 신속한 정보 수신은 매우 중요하였으며, 패킷선은 당시의 주요 정보 전달 수단이자 저널리즘 발전의 중심 역할을 하였다. 예를 들어 1840년 1월, 미국 패킷선 패트릭 헨리호(Patrick Henry)가 예정보다 일찍 리버풀에서 뉴욕에 도착하여 유럽의 중요 뉴스를 경쟁 신문보다 먼저 전달한 사례가 기록되어 있다.
항공기 명칭의 유래
페어차일드 항공기(Fairchild Aircraft)가 설계·제작한 C-82 패킷(Packet) 쌍발 엔진 트윈 붐 수송기는 패킷 보트에 대한 경의를 표하여 명명되었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군에서 사용되었다.
현대적 의미
현대에는 동아시아와 미국 간의 전자상거래를 지원하기 위해 미국 우체국(USPS)이 운영하는 ePacket 배송 서비스로 그 명칭이 계승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