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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인즈 랜딩 조약

패인즈 랜딩 조약(Treaty of Payne's Landing)은 1832년 3월 9일, 미국 정부와 세미놀 인디언(Seminole) 부족 사이에 체결된 조약이다. 조약명은 체결 장소인 플로리다 준주 오클라와하 강(Oklawaha River) 유역의 패인즈 랜딩(Payne's Landing)에서 유래하였다.

배경

1823년 몰트리 크릭 조약(Treaty of Moultrie Creek)에 따라 세미놀 인디언들은 플로리다 반도 중앙부에 설정된 보호구역으로 이주하고, 플로리다 준주 내의 모든 토지 권리를 포기하는 대신 보상금과 보급품, 그리고 20년간의 정부 지원을 받기로 하였다. 그러나 1828년 앤드루 잭슨(Andrew Jackson)이 미국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후, 미국 내 모든 인디언 부족을 미시시피 강 서쪽으로 이주시키려는 정책이 강력히 추진되었다. 1830년 미국 의회는 《인디언 이주법》(Indian Removal Act)을 통과시켰고, 이 법적·정치적 흐름 속에서 패인즈 랜딩 조약이 협상되었다.

주요 내용

조약의 핵심 내용은 세미놀 부족이 플로리다의 모든 토지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고 미시시피 강 서쪽의 인디언 준주(현재의 오클라호마)로 이주하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조건이 포함되었다.

  • 세미놀 부족은 플로리다의 보호구역을 포함한 모든 토지 권리를 미국 정부에 양도한다.
  • 미국 정부는 세미놀 부족에게 미시시피 강 서쪽의 새로운 토지를 제공한다.
  • 세미놀 부족 대표단이 먼저 서부 지역을 시찰한 후, 그 땅이 적합하다고 판단되면 이주를 진행한다.
  • 이주에 따른 비용과 보상금은 미국 정부가 부담한다.

이주 과정과 결과

조약 체결 후 1832년 10월, 7명의 세미놀 추장으로 구성된 대표단이 서부 지역을 시찰하기 위해 플로리다를 떠났다. 여러 달에 걸친 시찰과 당시 이미 그 지역에 정착해 있던 크릭(Creek) 부족과의 협의 끝에, 1833년 3월 28일 이들 추장은 새로운 땅을 수용한다는 내용의 성명서에 서명하였다. 그러나 플로리다로 돌아온 후 대부분의 추장은 서명 사실을 부인하거나 강제로 서명하게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또한 이들 추장이 보호구역 내 모든 부족민과 무리를 대표할 권한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었다.

미국 상원은 1834년 4월에야 이 조약을 비준하였고, 조약에 따라 세미놀 부족에게는 3년의 이주 유예 기간이 주어졌다. 그러나 대다수의 세미놀 부족은 이주를 거부하였고, 이는 1835년부터 1842년까지 이어진 제2차 세미놀 전쟁(Second Seminole War)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전쟁 결과 약 3,000명의 세미놀이 서부로 강제 이주되었고, 일부는 플로리다 에버글레이즈(Everglades)에 남아 저항을 지속하였다.

서명자

미국 측 서명자로는 제임스 가즈든(James Gadsden)이 대표로 참여하였다. 세미놀 측 서명자로는 홀라티 에마틀라(Holati Emartla), 점퍼(Jumper), 푸크타루스타하조(Fuch-ta-lus-ta-Hadjo), 찰리 에마틀라(Charley Emartla), 코아 하조(Coa Hadjo), 샘 존스(Ar-pi-uck-i, or Sam Jones), 야하 하조(Ya-ha Hadjo), 미코노하(Mico-Noha), 토코세 에마틀라(Tokose-Emartla, or Jno. Hicks), 캇샤 투스타넉키(Cat-sha-Tusta-nuck-i), 홀라아타미코(Hola-at-a-Mico, 일명 빌리 보우렉스 Billy Bowlegs), 히치이티미코(Hitch-it-i-Mico), 에네하(E-ne-hah), 야하 에마틀라 춥코(Ya-ha-emartla Chup-ko), 모케히셰라니(Moke-his-she-lar-ni) 등이 포함되었다. 대부분의 세미놀 서명자는 문자가 없어 X 표시로 서명을 대신하였다.

역사적 의의

패인즈 랜딩 조약은 19세기 미국의 인디언 이주 정책을 상징하는 조약 중 하나로, 세미놀 부족의 강제 이주와 제2차 세미놀 전쟁 발발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다. 이 조약은 미국 정부가 원주민 부족과 체결한 수많은 조약 중 하나로서, 당시 미국의 팽창 정책과 원주민 토지 수탈 과정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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