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패션 모델(Fashion Model)의 역사는 19세기 중반 유럽의 오뜨 꾸뛰르(haute couture) 산업 형성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패션 모델은 디자이너가 제작한 의복을 착용하고 이를 고객이나 대중에게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담당하는 직업으로, 이후 패션 사진·광고·런웨이 산업의 발달과 함께 그 역할과 위상이 크게 변화해 왔다.
초기: 직업으로서의 모델 탄생
패션 모델이 직업으로 정립된 시점은 일반적으로 1853년으로 언급된다. 영국 출신의 디자이너 찰스 프레데릭 워스(Charles Frederick Worth, 1825–1895)는 파리에서 활동하며 자신의 아내 마리 베르네(Marie Vernet, 1825–1898)에게 자신이 디자인한 의상을 입고 고객 앞에서 선보이게 했다. 이러한 방식은 "하우스 모델(house model)"로 불렸으며, 이후 파리의 패션하우스들 사이에서 일반적인 관행으로 확산되었다. 그 이전까지 의복은 인형(마네킹)이나 카탈로그를 통해 전시되었다는 점에서, 실제 사람이 의상을 입고 소개하는 방식은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변화였다.
이 시기 모델들은 신체 치수에 대한 엄격한 기준이 없었고, 패션하우스는 고객층의 다양한 체형을 반영하기 위해 다양한 체격의 모델들을 기용했다. 1910년대에는 패션 모델의 미덕으로 온화함이 강조되었으며, 1920년대 코코 샤넬의 등장 이후에는 대담하고 독립적인 여성상을 반영한 포즈와 이미지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패션 사진의 발달과 모델의 인지도 확대
패션 사진이 발달함에 따라 모델의 역할이 확장되었지만, 1950년대까지 모델들은 대체로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고 처우도 열악했다. 1930년대에 활동한 리사 폰사그리브스(Lisa Fonssagrives)는 최초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모델로 평가되며, 200회 이상 보그(Vogue)의 표지 모델을 맡아 "최초의 슈퍼모델"로 불린다.
1946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모델 에이전시 중 하나인 포드 모델스(Ford Models)가 설립되었다. 같은 시기 최초의 흑인 모델로는 파리에서 활동한 도로시아 처치(Dorothea Church), 미국 보그 최초의 흑인 표지 모델로는 1974년의 베벌리 존슨(Beverly Johnson)이 거론된다.
1960년대: 산업화의 시작
1960년대에 들어 모델 에이전시가 본격적으로 설립되기 시작했다. 1967년 런던의 탑 모델 에이전트 7명이 "런던 모델 에이전트 협회"를 결성하여 모델링을 보다 전문적인 영역으로 정립했다. 1968년에는 FM 에이전시와 모델스 원(Models 1)이 설립되어 오늘날 모델 에이전시들과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이 시기 런던은 유럽 최고의 패션 시장으로 부상했으며, 트위기(Twiggy, 본명 레슬리 혼비)를 비롯한 영국 모델들이 큰 인기를 얻었다. 트위기는 키 167cm, 보이쉬한 헤어스타일과 마른 체형으로 당시 이상적인 모델의 기준을 크게 바꾸어 놓았다. 그녀의 헤어스타일은 "트위기컷"이라는 이름으로 명명될 정도로 당대의 스타일 아이콘이 되었다.
1970–1980년대: 글로벌화와 슈퍼모델의 등장
1970년대에는 모델 에이전시들이 사업적 측면에서 성장하기 시작했고, 모델의 미디어 노출 방식을 통제하는 등 홍보 전략이 체계화되었다. 1980년 포드 모델스는 "포드 모델스 세계슈퍼모델 선발대회(Ford Models Supermodel of the World)"를 시작했다. 1981년에는 화장품 회사들이 탑 모델과 고액의 전속 계약을 체결하기 시작했다.
1974년에는 네브스 모델스(Nevs Models)가 세계 최초의 남성 모델 전문 에이전시로 런던에 설립되었다. 1975년에는 파리에 엘리트 모델스(Elite Models)가, 같은 해 일본에 프라이데이스 모델스(Friday's Models)가 설립되는 등 에이전시 산업의 국제적 확대가 이루어졌다.
1980년대에 들어 대부분의 모델들이 모델링을 전업으로 삼기 시작했고, 유럽 각지를 오가며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보편화되었다. 이 무렵 "슈퍼모델(supermodel)"이라는 개념이 정립되었으며, 패티 핸슨(Patti Hansen), 브룩 실즈(Brooke Shields) 등이 전성기를 이끌었다. 1980년대 뉴욕에서는 포드 모델스와 엘리트 모델스 사이에 모델과 광고 계약을 둘러싼 경쟁이 격화되어 "모델 전쟁"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1990년대: 슈퍼모델 전성시대
1990년대 초반은 1980년대 후반의 슈퍼모델들이 패션계를 지배하던 시기였다. 린다 에반젤리스타(Linda Evangelista), 나오미 캠벨(Naomi Campbell), 신디 크로퍼드(Cindy Crawford), 크리스티 털링턴(Christy Turlington), 클라우디아 쉬퍼(Claudia Schiffer) 등이 대표적이다. 린다 에반젤리스타가 "하루에 10,000달러 이상 벌지 않으면 일어나지 않아요"라고 말한 발언은 모델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1990년대 중반에는 건강미 넘치는 미적 기준에 대항하여 창백한 피부와 각진 골격이 특징인 "헤로인 시크(Heroin Chic)" 트렌드가 나타났으며, 캘빈 클라인 광고로 등장한 케이트 모스(Kate Moss)가 그 상징으로 여겨진다. 한편, 이 시기부터 많은 아시아 국가들에도 모델 에이전시가 설립되었다.
2000년대 이후
2000년대에는 지젤 번천(Gisele Bündchen)을 필두로 브라질 출신 모델들이 런웨이에서 각광받았다. 그러나 이 시기 패션 잡지들이 표지 모델로 전문 패션 모델보다 연예인을 주로 기용하면서 "슈퍼모델의 죽음"이라는 표현이 등장하기도 했다.
2000년대 패션계의 주요 논란은 하이패션 모델들의 건강 문제였다. 식이장애(주로 거식증)와 약물 남용으로 사망한 모델 사례가 언론에 보도되면서, 영국 패션 협회는 16세 미만 모델 기용 금지 계약을 도입했고, 2012년 보그는 식이장애가 있는 모델과 16세 미만 모델의 사용을 금지했다. 스페인, 이탈리아, 이스라엘 등 여러 국가에서도 최소 BMI 지수를 설정하는 등 규제가 도입되었다.
2010년대에는 인스타그램의 부상이 모델 산업의 구조를 크게 변화시켰다. SNS 플랫폼을 통해 기존 하이패션 기준에 맞지 않는 체형이나 외모의 모델들이 직접 소비자와 소통하며 커머셜 모델 시장에서 영향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또한 다양성(Diversity)에 대한 요구가 커지면서 유색인종, 플러스 사이즈, 시니어 모델 등의 등장이 증가했다. 2020년대에는 고령화 사회에 발맞추어 "그레이네상스(Greynaissance)"라 불리는 시니어 모델의 활동도 늘어나고 있다.
함께 참고할 사항
본 항목은 국내외의 다수 백과사전 및 위키 문서, 언론 보도, 학술 자료를 종합하여 작성되었다. 패션 모델의 역사에 대한 세부적인 연대와 인물 평가는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며, 특히 "최초의 모델"에 대한 지칭(마리 베르네 vs. 그 이전의 사례)에 대해서는 학계의 이견이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