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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의 역사

팔레스타인의 역사는 오늘날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요르단 일부 등이 위치한 지중해 동부 연안 지역(레반트)의 역사를 다룬다. 이 지역은 약 60만 년 전부터 인류가 거주한 것으로 추정되며,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의 성지로서 고대부터 현대까지 수많은 제국과 민족의 지배를 거쳐 왔다.

고대 및 선사 시대

갈릴리 호수 인근 유적에 따르면 약 60만 년 전부터 이 지역에 인류가 거주한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1만 년경부터 신석기 시대의 농업 공동체가 형성되었으며, 예리코(여리고) 지역에서는 진흙 벽돌 주거지와 성곽 유적이 발견되었다. 기원전 3000년경부터는 가나안인(카난인)들이 도시를 세우고 이집트,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등 주변 문명과 교역하였다.

철기 시대와 히브리 왕국

기원전 1250년경 남부 그리스 지역에서 필리시테인(블레셋 사람)이 도래하여 철제 무기와 마차 기술을 전파하였다. 히브리 성서에 따르면 기원전 10세기경 사울, 다윗, 솔로몬 왕이 연합 이스라엘 왕국을 통치하였으며, 다윗은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았다. 기원전 930년경 왕국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되었고, 기원전 722년 북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기원전 586년 남유다가 신바빌로니아에 멸망하면서 제1성전이 파괴되고 많은 유대인이 바빌론으로 끌려갔다.

페르시아·헬레니즘·로마 시대

기원전 538년 페르시아 제국이 바빌로니아를 정복한 후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제2성전을 재건하였다. 기원전 332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이 지역을 정복하면서 헬레니즘 문화가 유입되었고, 이후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와 셀레우코스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기원전 63년 로마의 폼페이우스가 이 지역을 점령하였고, 로마 제국은 이 지역을 유다이아 속주로 편성하였다.

66~73년의 제1차 유대-로마 전쟁에서 로마는 예루살렘을 함락시키고 제2성전을 파괴하였다. 132~135년 바르 코크바의 반란 실패 후 로마는 유대인을 예루살렘에서 추방하고 지역명을 '시리아 팔레스티나'로 변경하였다. 330년 콘스탄티누스 1세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 이 지역은 비잔티움 제국의 지배 아래 기독교 중심지로 발전하였다.

이슬람 시대와 십자군

638년 아랍 무슬림 세력이 예루살렘을 점령하면서 이슬람 지배가 시작되었다. 우마이야 왕조와 아바스 왕조 시기에 예루살렘에 알악사 모스크와 바위의 돔이 건립되었다. 1099년 제1차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예루살렘 왕국을 세웠으나, 1187년 살라흐 앗 딘(살라딘)이 예루살렘을 탈환하였다. 이후 맘루크 왕조(1291년~1516년)가 이 지역을 통치하였다.

오스만 제국 시대 (1516년~1917년)

1516년 오스만 제국이 이 지역을 점령하였으나 '팔레스타인'이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사용하지는 않았다. 19세기 오스만 제국의 쇠퇴와 함께 유럽 열강의 영향력이 확대되었고, 유대인들의 팔레스타인 이주(알리야)가 시작되었다.

영국 위임통치 시대 (1920년~1948년)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 제국이 패배한 후, 1920년 국제연맹은 영국에 팔레스타인 위임통치권을 부여하였다. 1917년 영국의 밸푸어 선언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 건설을 지지한다고 발표하였고, 이는 유대인 이주 증가와 아랍인과의 갈등 심화로 이어졌다. 1936~1939년 아랍인의 대반란이 발생하였고, 영국은 1939년 백서를 통해 유대인 이민을 제한하려 하였으나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 이후 유대인 이주는 더욱 가속화되었다.

1947년 유엔 분할안과 이스라엘 건국

1947년 11월 29일 유엔 총회는 팔레스타인 지역을 아랍 국가와 유대 국가로 분할하고 예루살렘을 국제 관리 지역으로 두는 분할안(결의안 181호)을 채택하였다. 유대인 지도부는 이를 수용하였으나 아랍 측은 거부하였다.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의 독립 선언 직후 이집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이라크 등 아랍 5개국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제1차 중동전쟁이 발발하였다.

전쟁 결과 이스라엘은 유엔 분할안보다 더 넓은 영토를 차지하였고, 약 70만 명의 팔레스타인 아랍인이 난민이 되었다(팔레스타인인들은 이를 '나크바', 즉 대재앙이라 부른다). 요르단강 서안 지구는 요르단이, 가자 지구는 이집트가 각각 통치하게 되었다.

1967년 6일 전쟁과 점령

1967년 제3차 중동전쟁(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요르단강 서안 지구, 가자 지구, 동예루살렘, 시나이반도, 골란고원을 점령하였다. 이스라엘은 이후 동예루살렘을 합병하고 서안 지구와 가자 지구에 유대인 정착촌을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42호는 이스라엘의 점령지 철수를 요구하였으나 이행되지 않았다.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와 인티파다

1964년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가 창설되었고, 1969년 야세르 아라파트가 PLO 의장이 되었다. 1987년 제1차 인티파다(민중봉기)가 발생하여 이스라엘의 점령에 대한 팔레스타인인의 저항이 본격화되었다. 1988년 PLO는 팔레스타인 독립 선언을 발표하고 이스라엘의 존재권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전환하였다.

오슬로 협정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1993년 이스라엘과 PLO 간 오슬로 협정이 체결되어 상호 승인과 함께 팔레스타인 자치정부(PA)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1995년 이츠하크 라빈 이스라엘 총리가 극우 유대인에게 암살당하고, 정착촌 확장과 폭력 사태가 지속되면서 평화 과정은 정체되었다.

2000년 이후

2000년 제2차 인티파다가 발발하였고, 이스라엘은 서안 지구에 분리 장벽을 건설하기 시작하였다. 2005년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에서 군대와 정착민을 철수시켰으나, 가자 지구의 영공·영해·국경에 대한 통제는 유지하였다. 2006년 팔레스타인 총선에서 하마스가 승리한 후, 2007년 하마스가 가자 지구를 장악하면서 팔레스타인은 서안 지구(파타)와 가자 지구(하마스)로 분할되었다.

2012년 유엔 총회는 팔레스타인을 비회원 옵서버 국가 지위로 승격시켰다. 2013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는 공식 명칭을 '팔레스타인국'으로 변경하였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기습 공격으로 대규모 전쟁이 발발하였으며,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군사 작전은 막대한 민간인 사상자와 인도주의적 위기를 초래하였다.

현재의 쟁점

팔레스타인 문제의 핵심 쟁점으로는 팔레스타인 난민의 귀환권, 예루살렘의 지위, 이스라엘 정착촌의 합법성, 1967년 국경을 기준으로 한 두 국가 해법의 실현 가능성 등이 있다. 국제사회는 대체로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하나, 이스라엘의 정착촌 확장과 양측의 정치적·군사적 대립으로 인해 평화 협상은 장기간 교착 상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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