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덴 톤두프 남걀(Palden Thondup Namgyal, 1923년 5월 23일 ~ 1982년 1월 29일)은 시킴 왕국(Kingdom of Sikkim)의 마지막 군주이자 제12대 초걀(Chogyal)이다. 그는 시킴이 인도로 흡수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초기 생애 및 교육
1923년 5월 23일, 시킴 왕국의 수도 강톡(Gangtok)에서 제11대 초걀 타시 남걀(Tashi Namgyal)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왕축 팔덴 톤두프 남걀(Wangchuk Palden Thondup Namgyal)이다. 인도의 명문 학교인 데라둔(Dehradun)의 비숍 코튼 학교(Bishop Cotton School)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이후 티베트의 룸텍(Rumtek) 수도원에서 불교 승려 교육을 받기도 했다. 어린 시절부터 부친을 보좌하며 정치와 행정에 대한 경험을 쌓았으며,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인도군에 복무하기도 했다.
통치
1963년 부친 타시 남걀 초걀이 사망하자, 1965년 4월 4일 정식으로 초걀로 즉위하여 시킴의 통치자가 되었다. 그의 통치 기간은 시킴의 지정학적 위치와 인도와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는 시기였다. 특히 1963년 미국의 사회학자 홉 쿡(Hope Cooke)과의 결혼은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으며, 시킴의 독립성 유지에 대한 그의 의지를 보여주는 한편, 인도와의 관계에 미묘한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그는 시킴의 경제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관광 산업을 육성하려 했으나, 내부 정치적 불안정과 인도의 지속적인 압력에 직면했다.
시킴의 인도 합병
1970년대 초반부터 시킴 내부의 정치적 불안정성, 특히 네팔계 이민자들과 토착민 간의 갈등이 심화되었고, 인도의 개입이 노골화되었다. 1974년 인도 군대가 시킴에 주둔하며 사실상 통제권을 장악했으며, 시킴 의회는 왕정 폐지와 인도로의 합병을 결의했다. 이 과정에서 팔덴 톤두프 남걀은 인도의 일방적인 개입에 반대하고 시킴의 독립을 지키려 노력했으나 역부족이었다. 같은 해 4월, 인도는 시킴에서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합병을 확정했고, 시킴은 인도의 22번째 주(state)로 편입되었다. 이로써 팔덴 톤두프 남걀의 통치는 종식되었고, 시킴 왕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말년 및 사망
시킴이 인도에 합병된 이후, 그는 초걀로서의 지위와 권한을 상실했으며, 비공식적인 위치에서 여생을 보냈다. 그는 합병의 불법성을 국제사회에 알리려 노력했으나 큰 반향을 얻지 못했다. 1982년 1월 29일, 미국 뉴욕에서 암으로 사망했다. 그의 시신은 시킴으로 운구되어 전통 장례를 치렀다.
유산
팔덴 톤두프 남걀은 시킴의 마지막 독립 군주로서, 그의 통치 기간은 시킴이 독립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잃고 인도의 주로 편입되는 격변의 시기와 맞물려 있다. 그는 시킴의 문화와 정체성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국제 정세와 내부 갈등의 복합적인 요인으로 인해 독립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의 삶은 20세기 중반 히말라야 지역의 복잡한 지정학적 상황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례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