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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리노 알칸타라

파울리노 알칸타라 리에스트라(Paulino Alcántara Riestrá, 1896년 10월 7일 ~ 1964년 2월 13일)는 필리핀과 스페인 국적을 가진 전직 축구 선수이자 축구 지도자, 의사이다. 포지션은 공격수였다.

생애와 배경

파울리노 알칸타라는 1896년 10월 7일, 당시 스페인의 해외 영토였던 필리핀 일로일로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에두아르도 알칸타라는 스페인계 필리핀인 출신으로 스페인 군에서 복무했으며, 어머니 빅토리아나 카밀란 리에스트라는 필리핀인이었다. 스페인 식민지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그는 스페인 국적을 보유했으며, 이후 필리핀 국적과의 이중 국적을 유지했다.

1899년 가족과 함께 스페인 바르셀로나로 이주했다. FC 바르셀로나가 창단된 해와 같은 해였다. 1909년경 의대생들이 설립한 운동 클럽인 아틀레틱 클루브 갈레아노(Athletic Club Galeano)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FC 바르셀로나에서의 선수 경력

알칸타라는 1912년 2월 25일, 만 15세의 나이로 FC 바르셀로나 1군에 데뷔했다. 이는 현재까지도 바르셀로나 구단 역사상 최연소 1군 데뷔 기록으로 남아 있다. 데뷔전에서 그는 카탈라 스포르트 클럽을 상대로 9-0 승리를 거둔 경기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그는 1912년부터 1927년까지 바르셀로나에서 활약하며 구단 통산 399경기에 출전해 395골을 기록했다. 이 기록은 2014년 리오넬 메시가 경신할 때까지 바르셀로나 구단 역사상 최다 득점 기록이었다. 그는 강력한 슈팅 능력으로 유명했으며, 양발을 모두 능숙하게 사용했다.

1916년부터 1918년까지 그는 의학 공부를 위해 필리핀으로 돌아가 마닐라의 보헤미안 스포르팅 클럽에서 활약하며 필리핀 내셔널 챔피언십에서 두 차례 우승을 차지했다. 이 기간 동안 필리핀 국가대표팀에도 선발되어 1917년 도쿄에서 열린 극동 경기 대회(Far Eastern Games)에 참가했고, 일본과의 경기에서 15-2 대승을 거둔 경기에서 두 골을 넣었다.

1918년 바르셀로나로 복귀한 후, 그는 1927년 7월 3일 은퇴할 때까지 바르셀로나에서 활약했다. 은퇴 경기에서는 레스 코르츠 구장에서 팬들의 특별한 경의를 받았다.

국가대표 경력

알칸타라는 필리핀, 카탈루냐, 스페인 세 팀의 국가대표로 뛰었다. 필리핀 대표로는 2경기에 출전했고, 스페인 대표로는 5경기에 출전해 6골을 기록했다. 스페인 대표팀 데뷔는 1921년 10월 7일, 그의 25번째 생일 당일에 이루어졌다.

1922년 4월 30일 프랑스와의 경기에서 그의 슛이 골망을 뚫는 사건이 발생했으며, 이로 인해 그는 "골네트 파괴자"(El romperredes)라는 별명을 얻었다. 다만 후일 그의 동료였던 마누엘 로페스가 밝힌 바에 따르면, 당시 골망이 낡아 여러 구멍이 뚫려 있었으며 슛 자체보다는 낡은 골망 상태 때문에 네트가 찢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축구 이후의 삶

알칸타라는 1920년대 중반부터 축구 선수 생활과 의사로서의 직업을 병행했다. 은퇴 후에는 의사로 활동했다. 1931년부터 1934년까지 FC 바르셀로나 이사회 구성원으로 활동했으며, 1951년부터 1953년까지 스페인 대표팀과 카탈루냐 대표팀의 감독을 역임했다. 또한 바르셀로나 선수 협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1930년대에 그는 스페인 팔랑헤당(Falange Española)에 가입했다. 스페인 내전 당시인 1936년에는 프랑코 진영에 참여했으며, 제1차 전차 연대 제2중대와 이탈리아-스페인 합동 군단 "검은 화살"(Flechas Negras) 제1대대에서 중위로 복무했다. 1939년 1월 26일 프랑코 군대와 함께 바르셀로나에 입성했다. 내전 종전 후에도 프랑코 정권 하에서 여러 직책을 맡았다.

알칸타라는 1964년 2월 13일 바르셀로나에서 사망했으며, 바르셀로나에 안장되었다.

주요 수상 경력

  • 스페인 컵(코파 델 레이) 우승 5회 (1912/13, 1919/20, 1921/22, 1924/25, 1925/26)
  • 카탈루냐 선수권 우승 10회
  • 필리핀 내셔널 챔피언십 우승 2회 (보헤미안 SC, 1916/17, 1917/18)
  • 1917년 극동 경기 대회 은메달 (필리핀 대표)

평가와 유산

알칸타라는 FC 바르셀로나의 첫 번째 위대한 스타로 평가받으며, 아시아 출신 선수로는 최초로 유럽 클럽에서 활약한 선수로 기록되어 있다. 2007년 FIFA는 그를 역대 최고의 아시아 축구 선수로 공식 인정했다. 필리핀에서는 그를 기려 필리핀 축구 리그의 컵 대회 명칭을 "코파 파울리노 알칸타라"로 명명했다.

2021년에는 필리핀 스포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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