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 르쥔-융
파울 르쥔-융(Paul Lejeune-Jung, 1882년 10월 3일 ~ 1944년 9월 8일)은 독일 제국과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의 정치인이자 경제학자이며, 나치 독일 시기 아돌프 히틀러에 대항한 저항 운동가이다.
생애 및 활동 1882년 독일 쾰른에서 태어났다. 본 대학교와 뮌헨 대학교 등에서 신학, 철학, 역사, 경제학을 전공하였으며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초기에는 언론계와 산업계에서 경력을 쌓았으며, 특히 독일 펄프 산업 연합회의 이사로 재직하는 등 경제 전문가로서 활동했다.
정치적으로는 독일 중앙당(Zentrumspartei)에 소속되어 활동했다. 1924년부터 1933년까지 독일 국회의원(Reichstag)을 역임하며 주로 경제 및 관세 정책 분야에서 목소리를 냈다.
나치 저항 운동 1933년 나치당이 권력을 장악한 이후, 그는 점차 나치 정권의 정책에 비판적인 입장으로 돌아섰다. 그는 카를 프리드리히 괴르델러(Carl Friedrich Goerdeler) 등 반나치 인사들과 교류하며 저항 세력에 합류했다.
르쥔-융은 1944년 7월 20일 발생한 히틀러 암살 미수 사건(7월 20일 음모)에 가담했다. 음모가 성공할 경우 수립될 새로운 정부에서 경제부 장관 후보로 거론될 만큼 저항 조직 내 핵심적인 경제 정책 전문가로 평가받았다.
체포 및 사망 암살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후, 나치 정권의 대대적인 검거 선풍 속에서 체포되었다. 그는 1944년 9월 3일 인민재판소(Volksgerichtshof)에서 사형을 선고받았으며, 같은 해 9월 8일 베를린의 플뢰첸제 형무소에서 처형되었다.
사후 평가 오늘날 독일에 설치된 여러 추모 시설 및 명패(Stolpersteine 등)를 통해 나치 정권에 저항하다 희생된 인물로 기려지고 있다. 본인과 그의 동료들이 추구했던 전후 독일의 경제 질서 구상은 이후 서독의 사회적 시장경제 모델 형성에 사상적 배경 중 하나가 되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