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불라(fabula, 라틴어)는 문맥에 따라 여러 의미로 사용되는 용어이다. 다음은 주요 용례들이다.
1. 서사학적 개념
서사학(narratology)에서 파불라(fabula, 러시아어: фабула)는 내러티브 세계 안에서 사건들이 연대기적·인과적으로 일어난 순서 그 자체, 즉 이야기의 바탕이 되는 사건들의 시간적 배열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이는 20세기 초 러시아 형식주의(Russian Formalism) 운동에서 블라디미르 프롭(Vladimir Propp)과 빅토르 슈클로프스키(Viktor Shklovsky)가 정립한 용어로,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난 순서를 시간순으로 늘어놓은 '재료'에 해당한다. 이와 대비되는 개념인 슈제트(syuzhet, сюжет)는 동일한 사건들이 독자 또는 관객에게 제시되는 순서, 즉 작가가 재배열·구성한 이야기의 서술적 배열을 뜻한다. 예를 들어 영화 《시민 케인》에서 주인공의 죽음이 먼저 제시되고 이후 회상으로 생애가 그려지는 것은 슈제트의 비선형적 배열이며, 그 이면에서 사건의 실제 시간 순서를 이루는 것은 파불라로 볼 수 있다. 파불라는 영어의 'story' 개념에 가깝고, 한국어의 '줄거리'와 유사한 의미로 이해되기도 한다.
2. 히기누스의 라틴어 신화 편람
파불라(Fabulae)는 로마 시대의 저작으로, 히기누스(Hyginus)라는 저자 이름으로 전해지는 라틴어 신화 편람이다. 약 300개의 짧은 신화 이야기와 신들의 계보, 신화적 인물 목록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주로 그리스 신화를 다룬다. 저자에 대해서는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기의 가이우스 율리우스 히기누스로 보는 견해와, 실제 저자는 서기 2세기 후반에 살았던 별개의 인물이라는 견해가 학계에서 대립한다. 현대 학계에서는 대체로 전자와 다른 별개의 히기누스가 저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이 작품은 현재는 소실된 그리스 비극 작품들의 정보를 보존하고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인정된다.
3. 라틴어 일반 명사로서의 의미
라틴어 'fabula'는 '이야기', '우화', '소문', '극' 등을 뜻하는 일반 명사이다. 현대의 'fable'(우화)이라는 단어는 이 라틴어에서 파생된 것이다.
4. 로마 신화에서의 용례
로마 신화에서 파불라는 아카 라렌티아(Acca Larentia)의 별명으로도 사용되었는데, 이는 로마의 건국자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키운 양치기 파우스툴루스의 아내를 가리킨다. '파불라'는 '여자 이리', 더 나아가 '창녀'라는 의미로도 쓰였다는 해석이 일부 자료에서 제시되나, 이 용례는 문헌적 정확성에 대한 확증이 제한적이다.
이처럼 '파불라'는 서사학 이론, 고대 문헌, 라틴어 어휘 등 서로 다른 학문 영역에서 각기 다른 의미로 정착된 다의적 용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