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바느(pavane)는 16세기 초 이탈리아에서 발생하여 17세기 중엽까지 유럽 궁정에서 유행한 장중한 무곡(舞曲)이다. 프랑스어 표기로는 파반느(pavane)라고도 하며, 영어로는 파반(pavan)으로 불린다.
어원
파바느의 명칭 기원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가설이 공존한다. 첫째는 이탈리아어로 '공작(孔雀)'을 뜻하는 '파보네(pavone)'에서 유래했다는 설로, 춤의 동작이 공작새가 꼬리를 펼치고 위엄 있게 걷는 모습과 유사하다는 점에 근거한다. 둘째는 이탈리아 북부 도시 파도바(Padua)의 지명에서 유래하여 '파도바 풍의 춤'을 의미하는 '단차 파도바나(danza padovana)'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다.
음악적 특징
파바느는 2박자 또는 4박자 계열(2/2, 4/4)의 느린 템포로 연주되며, 장중하고 절제된 분위기가 특징이다. 일반적으로 8마디, 12마디 또는 16마디 단위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며 각 부분이 반복되는 형식을 취한다. 독립적으로 연주되기보다는 활기찬 3박자 무곡인 갈리아드(galliard)와 짝을 이루어 '느림-빠름'의 대비를 이루는 경우가 많았으며, 이는 이후 기악 모음곡(suite)의 초기 형태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역사적 전개
16세기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파바느는 프랑스, 영국, 스페인 등 유럽 각국의 궁정으로 전파되었다. 궁정 무도회에서 파바느는 주로 개막을 알리는 의례적 성격을 띠었으며, 귀족들은 화려한 의복을 갖추고 느린 행진을 하며 자신의 품위와 권위를 과시하는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17세기 중반 이후 쿠랑트(courante)나 미뉴에트(menuet) 등 보다 경쾌한 춤이 유행하면서 무곡으로서의 파바느는 점차 쇠퇴하였으나, 기악곡 형식으로 독립하여 존속하였다.
주요 작품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이르러 파바느는 여러 작곡가에 의해 부활되었다.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모리스 라벨(Maurice Ravel)의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Pavane pour une infante défunte, 1899)과 가브리엘 포레(Gabriel Fauré)의 《파반 Op.50》(Pavane in F-sharp minor, Op. 50, 1887)이 널리 알려져 있다. 르네상스 시기의 작곡가로는 존 다울랜드(John Dowland)의 《라크리메》(Lachrimae, 1604)에 수록된 일곱 곡의 파반이 대표적이다.
현대적 활용
한국에서는 박민규의 장편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2009)와 이를 원작으로 한 2026년 넷플릭스 영화 《파반느》를 통해 이 용어가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또한 영국의 SF 작가 키스 로버츠(Keith Roberts)의 대체역사 소설 《파반》(Pavane, 1968)에서도 제목으로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