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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해방

파리 해방(프랑스어: Libération de Paris)은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4년 8월 19일부터 8월 25일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벌어진 전투로, 나치 독일의 점령으로부터 파리가 해방된 사건이다.

배경 파리는 1940년 6월 22일 프랑스-독일 휴전 협정 이후 나치 독일의 점령 하에 있었다. 1944년 6월 6일 연합군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오버로드 작전) 이후 연합군은 프랑스 본토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당시 연합군 최고사령관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는 파리 해방을 주요 목표로 삼지 않았고, 독일군을 라인강 방면으로 추격하는 데 집중하려 했다. 그러나 파리 내 프랑스 레지스탕스(FFI, 프랑스 국내군)가 8월 15일부터 파업과 봉기를 시작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전투 경과 8월 19일, 프랑스 레지스탕스 대원들이 파리 시내에서 독일군을 상대로 본격적인 봉기를 일으켰다. 약 2만 명의 레지스탕스 대원들이 있었으나 대부분 무장이 부족한 상태였다. 8월 24일 밤, 필리프 르클레르 드 오트클로크 장군이 이끄는 프랑스 제2기갑사단(2e DB)의 선봉대(차드 연대 9중대, '라 누베')가 파리에 진입하여 파리 시청사에 도착했다. 8월 25일, 제2기갑사단 주력 부대와 미국 제4보병사단 등 연합군이 파리로 진입했다.

독일군 항복 파리 주둔 독일군 사령관이자 파리 군정 총독이었던 디트리히 폰 콜티츠는 아돌프 히틀러가 파리 전역을 파괴하라는 명령을 내렸음에도 이를 따르지 않고, 8월 25일 오후 3시 30분 호텔 뫼리스에서 프랑스군에 항복했다. 이후 몽파르나스역에서 공식 항복 문서에 서명했다.

드골의 연설 같은 날, 샤를 드골 장군은 파리 시청사(오텔 드 빌) 앞에서 유명한 연설을 했다. "파리는 모욕당했다! 파리는 부서졌다! 순교한 파리! 그러나 해방된 파리!"라는 구절로 시작되는 이 연설에서 드골은 파리가 프랑스군의 도움으로 스스로 해방되었다고 선언했으며, 프랑스 공화국 임시정부의 수장이 되었다.

승리 행진 8월 26일, 드골은 샹젤리제 거리에서 승리 행진을 주도했으며, 약 200만 명의 시민이 이를 지켜본 것으로 추정된다. 8월 29일에는 미국 제28보병사단의 승리 퍼레이드가 열렸다.

결과 및 의의 파리 해방 전투에서 약 800~1,000명의 레지스탕스 대원이 전사하고 1,500명이 부상당했다. 프랑스 제2기갑사단은 사망 71명, 부상 225명의 피해를 입었다. 이 전투를 통해 프랑스 공화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비시 프랑스 정권은 사실상 멸망했다. 파리 해방은 샤를 드골과 자유 프랑스에게 정치적 정통성과 명성을 부여했으며, 프랑스가 전후 승전국으로서의 지위를 확보하는 계기가 되었다. 매년 8월 25일은 파리 해방 기념일로 기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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