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르마(이탈리아어: Parma, 에밀리아어: Pärma)는 이탈리아 북부 에밀리아로마냐주에 위치한 도시이다. 볼로냐 다음으로 주 내에서 인구가 두 번째로 많은 도시로, 동명의 파르마강에 의해 도시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있으며, 강을 기준으로 서쪽 지역은 올트레토렌테(Oltretorrente)로 불린다.
명칭의 유래
'파르마'라는 명칭은 고대 로마인들이 '파르마(parma)'라고 불렀던 둥근 방패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일부 학설은 이 도시가 에트루리아인들에 의해 세워졌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에트루리아 비문에서 발견되는 '파르메알(Parmeal)', '파름니(Parmni)' 등의 단어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본다. 도시명의 정확한 기원에 대해서는 학설이 분분하다.
역사
파르마 지역에는 청동기 시대(기원전 약 1,500년~800년)부터 테라마레 문화의 정착지가 존재했다. 기원전 183년에 로마의 식민지로 세워졌으며, 아이밀리아 가도와 클라우디아 가도가 교차하는 교통의 요지로 중요성을 지녔다. 기원전 43년에 파괴된 후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도시를 재건했으며, 로마 제정 시기에는 황가에 대한 충성심으로 '율리아(Julia)'라는 칭호를 부여받았다.
이후 아틸라의 약탈(452년), 동고트 왕국의 지배, 비잔티움 제국의 라벤나 총독부의 일부로 편입되는 등 다양한 통치를 거쳤고, 569년부터는 랑고바르드족의 지배 하에 있었다. 중세에는 로마와 북유럽을 잇는 주요 순례 도로인 프랑키게나 가도의 중요한 거점이 되었다.
중세 후기에는 자유 코무네(도시 공화국)로 성립되었고, 1545년 교황 바오로 3세가 파르마와 피아첸차를 교황령에서 분리하여 자신의 서자 피에르 루이지 파르네세에게 하사하면서 파르네세 가문의 통치가 시작되었다. 파르네세 가문의 지배는 약 173년간 이어졌다.
나폴레옹 전쟁 기간(1802년~1814년)에는 프랑스에 합병되었고, 빈 회의(1814~1815년)를 거쳐 파르마 공국이 복원되었다. 1860년 국민투표를 통해 통일 이탈리아 왕국의 일부가 되었다.
지리와 기후
파르마는 이탈리아 북부 내륙에 위치하며, 온난 습윤 기후(쾨펜: Cfa)에 해당한다. 연평균 최고 기온은 약 17°C, 최저 기온은 약 9°C이며, 연평균 강수량은 약 774mm이다. 겨울철에는 연평균 약 45cm의 눈이 내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제
파르마는 번영하는 경제를 갖춘 도시로, 특히 식품 산업이 발달해 있다. 세계적인 파스타 제조 기업인 바릴라(Barilla)가 이 도시를 기반으로 한다. 제약 분야에서는 키에시 파르마체우티치(Chiesi Farmaceutici)가 본사를 두고 있으며, 2004년부터 유럽 식품안전청(EFSA)의 본부가 파르마에 소재하고 있다.
음식과 문화
파르마는 미식으로 유명한 도시로, 파르미자노 레자노(Parmigiano Reggiano) 치즈와 프로슈토 디 파르마(Prosciutto di Parma, 파르마 햄)의 본고장으로 알려져 있다. 이 두 특산품은 원산지 명칭 보호(DOP) 지위를 지니고 있다. 또한 속을 채운 파스타 요리인 토르텔리 데르베타와 아놀리니 인 브로도의 원산지라고 주장된다.
2004년에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의 '미식 도시'로 지정되었으며, 이탈리아에서 이 명칭을 처음으로 받은 도시이다.
파르마는 건축, 음악, 예술 분야에서도 이름이 높다. 파르마 대성당과 파르마 예배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표적인 종교 건축물이며, 르네상스 화가 안토니오 다 코레조의 프레스코화로 유명하다. 또한 오페라 작곡가 주세페 베르디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으며, 시립 오페라 극장인 테아트로 레조가 자리하고 있다.
교육과 인구
파르마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교 중 하나로 여겨지는 파르마 대학교가 위치해 있다. 2020년 기준 인구는 약 198,000명이며, 2025년 기준으로는 약 202,000명으로 추산된다.
스포츠
파르마에는 세리에 A(이탈리아 1부 리그)에 참가하는 축구 클럽 파르마 칼초 1913이 연고를 두고 있으며, 홈 경기장은 스타디오 엔니오 타르디니이다. 또한 럭비 유니언 클럽인 제브레(Zebre)가 프로14 대회에 참가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파르마는 파르티잔 저항의 강력한 중심지였으며, 1944년 봄 연합군의 공중 폭격으로 기차역 인근이 피해를 입었다. 팔라초 델라 필로타의 대부분과 파르네세 극장, 팔라티나 도서관의 일부가 파괴되었고, 도서관에서 소장되던 약 21,000권의 장서가 소실되었다. 파르마는 1945년 4월 26일 파르티잔 저항 세력과 브라질 원정군에 의해 독일 점령에서 해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