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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팟 돔 스캔들

티팟 돔 스캔들(Teapot Dome scandal)은 1920년대 미국에서 발생한 정치적 부정부패 사건으로, 워런 G. 하딩(Warren G. Harding) 대통령 행정부 시절 내무장관 앨버트 B. 폴(Albert B. Fall)이 민간 석유 회사로부터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스캔들이다. 이 사건은 워터게이트 사건 이전까지 "미국 정치 역사상 가장 크고 선정적인 스캔들"로 평가되었다.

배경

미국 해군이 항상 충분한 연료를 확보할 수 있도록,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William Howard Taft) 대통령은 몇몇 석유 생산 지역을 해군 석유 비축지로 지정하였다. 1921년, 하딩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 와이오밍주 내트로나군의 티팟 돔(Teapot Dome) 유전과 캘리포니아주 컨군의 엘크 힐스(Elk Hills) 유전 및 부에나 비스타(Buena Vista) 유전에 대한 통제권을 해군부에서 내무부로 이전하도록 하였다.

전개

1922년, 내무장관 앨버트 B. 폴은 경쟁 입찰 없이 티팟 돔 유전의 석유 생산 권한을 싱클레어 석유 회사(Sinclair Oil)의 자회사인 매머스 오일(Mammoth Oil)의 해리 F. 싱클레어(Harry F. Sinclair)에게 임대하였다. 또한 엘크 힐스 비축지를 팬 아메리칸 석유 운송 회사(Pan American Petroleum Transport Company)의 에드워드 L. 도히니(Edward L. Doheny)에게 임대하였다. 두 임대 계약 모두 경쟁 입찰 없이 이루어졌으나, 1920년 광물 임대법(Mineral Leasing Act of 1920)에 따라 입찰 없는 임대 자체는 합법이었다.

그러나 폴은 도히니로부터 100,000달러(2018년 기준 약 181만 달러 상당)의 무이자 대출을 받았고, 싱클레어와 도히니로부터 총 약 404,000달러(2018년 기준 약 729만 달러 상당) 상당의 선물을 수수하였다. 폴의 생활 수준이 갑자기 향상되고 오랫동안 미납되었던 목장 세금을 일시에 납부하면서 의혹이 제기되었다.

조사와 결과

1922년 4월, 와이오밍주의 한 석유 사업가가 상원의원 존 B. 켄드릭(John B. Kendrick)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조사가 시작되었다. 1923년 3월, 미국 상원은 티팟 돔에 대한 첫 조사를 개시하였다. 몬태나주 출신의 민주당 상원의원 토마스 J. 월시(Thomas J. Walsh)가 2년간의 장기 조사를 주도하였다.

조사 과정에서 폴이 도히니로부터 10만 달러를 대출받은 사실이 결정적 증거로 드러났다. 1927년, 미국 연방 대법원은 석유 임대 계약이 부패하게 취득되었다고 판결하였고, 엘크 힐스 임대 계약과 티팟 돔 임대 계약을 각각 무효화하였다. 두 비축지는 모두 해군으로 반환되었다.

1929년, 앨버트 B. 폴은 도히니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아 수감되었으며, 이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내각 구성원이 수감된 사례였다. 반면, 뇌물을 제공한 도히니는 1930년 무죄 판결을 받았다. 싱클레어는 배심원 위증 혐의로 6개월을 복역하였다.

영향과 유산

이 스캔들은 하딩 행정부의 명성을 영구적으로 훼손하였으며, 이후 캘빈 쿨리지(Calvin Coolidge) 대통령의 정직성에 대한 명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의회는 이 사건을 계기로 납세자의 세금 기록에 대한 소환 권한을 부여하는 영구 법안을 통과시켰고, 1925년 연방 부패 관행법(Federal Corrupt Practices Act)이 강화되었다. 또한 1927년 맥그레인 대 도허티(McGrain v. Daugherty) 판결을 통해 의회가 증언을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이 처음으로 명시적으로 확립되었다.

티팟 돔 유전은 스캔들 이후 49년간 방치되었다가 1976년에 다시 생산을 시작하였으며, 2015년 2월 미국 에너지부는 이 유전을 4,500만 달러에 민간 기업에 매각하였다. 이후 '티팟 돔'이라는 용어는 미국 정치에서 정부 부패를 상징하는 대명사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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