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토(Josip Broz Tito, 본명 Josip Broz 요시프 브로즈, 1892년 5월 7일 ~ 1980년 5월 4일)는 유고슬라비아의 공산주의 혁명가, 군인, 정치가이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의 지도자였으며, 전후에는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자 유고슬라비아 공산주의자 동맹의 서기장을 역임하며 1945년부터 1980년 사망할 때까지 유고슬라비아를 이끌었다. 그는 냉전 시대에 제3세계 비동맹 운동의 주요 지도자 중 한 명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다.
본명 및 초기 생애
요시프 브로즈는 1892년 5월 7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 왕국(현재의 크로아티아) 쿰로베츠에서 크로아티아인 아버지와 슬로베니아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금속 노동자로 일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중 오스트리아-헝가리군으로 징집되어 동부 전선에서 러시아군에 포로로 잡혔다. 포로 생활 중 러시아 혁명에 영향을 받아 볼셰비즘과 공산주의 사상에 심취하게 되었다. 전쟁 후 유고슬라비아로 돌아와 공산당 활동을 시작했으며, 수 차례 투옥되는 등 탄압을 겪으면서도 공산당 내에서 지도적 위치를 굳혀갔다.
제2차 세계 대전과 파르티잔
1941년 나치 독일이 유고슬라비아를 침공하자, 티토는 유고슬라비아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서기장으로서 광범위한 저항 운동인 파르티잔(Partisan)을 조직하고 그 총사령관이 되었다. 티토의 파르티잔은 추축국 점령군(독일, 이탈리아)과 국내 협력자들(크로아티아 우스타샤, 세르비아 체트니크 등)에 맞서 강력한 게릴라전을 펼쳤다. 이는 유럽에서 가장 효과적이고 조직적인 저항 운동 중 하나로 평가받았으며, 연합국은 점차 티토의 파르티잔을 공식적인 유고슬라비아 저항 세력으로 인정하고 지원을 보냈다. 파르티잔은 전쟁 중 상당수의 유고슬라비아 영토를 해방시키며 전후 유고슬라비아 정권 수립의 기반을 다졌다.
유고슬라비아 지도자
1945년 전쟁이 끝나자 티토는 신생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의 초대 총리가 되었고, 이후 대통령 직을 수행했다. 그는 유고슬라비아의 여러 민족(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 마케도니아인, 몬테네그로인, 보스니아인)을 하나의 연방 국가로 통합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특히 1948년에는 소련의 이오시프 스탈린과 결별하고 독자적인 사회주의 노선인 '티토주의'와 '자주관리'(Self-management) 체제를 표방하며 서방과 소련 양쪽으로부터 독립적인 위치를 유지했다. 이로 인해 유고슬라비아는 철의 장막 뒤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서유럽과 동유럽 모두와 경제적, 문화적 교류를 할 수 있었다.
비동맹 운동
티토는 냉전 시대에 미국 중심의 서방 진영과 소련 중심의 동구권 진영 모두에 속하지 않는 '제3의 길'을 모색했다. 그는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이집트의 가말 압델 나세르, 인도의 자와할랄 네루, 가나의 콰메 은크루마 등과 함께 1961년 비동맹 운동을 창설하고 그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 국제 무대에서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그는 제3세계 국가들의 자율성과 독립을 옹호하며 평화 공존과 국제 협력을 강조했다.
사망과 유산
티토는 1980년 5월 4일 사망했다. 그의 사망은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안정을 유지하던 강력한 구심점의 상실을 의미했다. 그의 사망 이후, 유고슬라비아는 복잡한 민족 갈등과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하며 결국 1990년대 초 격렬한 유고슬라비아 전쟁을 거쳐 해체되었다.
티토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다양한 민족을 통합하고 독립적인 외교 정책을 펼쳤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권위주의적 통치, 반대 세력 탄압, 인권 침해에 대한 비판도 동시에 받고 있다. 그는 복잡하고 다면적인 인물로, 20세기 역사와 발칸 반도 정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