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리다테스 2세(Tiridates II)는 고대 파르티아 및 아르메니아의 역사에서 등장하는 인물 명칭으로, 동명(同名)의 인물이 여러 명 존재한다. 가장 널리 알려진 두 인물은 파르티아의 왕위 주장자였던 티리다테스 2세(Tiridates II of Parthia)와 아르메니아의 아르사케스 왕조 출신 왕이었던 티리다테스 2세(Tiridates II of Armenia)이다. 이 문서에서는 이 두 인물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1. 파르티아의 티리다테스 2세 (기원전 1세기)
파르티아의 티리다테스 2세는 기원전 약 32년경 파르티아 내부 세력에 의해 프라아테스 4세(Phraates IV)에 대항하는 왕위 주장자로 세워진 인물이다. 그는 프라아테스 4세를 잠시 몰아내고 왕위를 차지했으나, 프라아테스가 스키타이인들의 지원을 받아 귀환하면서 축출되었다. 이후 티리다테스는 시리아로 망명하였으며, 로마의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그를 체류시키는 것을 허용했으나 적극적인 지원은 거부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에도 티리다테스는 파르티아를 다시 침공한 적이 있는데, 기원전 26년 3월과 5월에 주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아르사케스 필로로마이오스(Arsaces Philoromaios)'라는 이름의 주화가 그에게 귀속된 것으로 보고된다. 그러나 그는 곧 다시 추방되었고, 프라아테스의 아들을 데리고 스페인에 있는 아우구스투스를 방문하기도 하였다. 아우구스투스는 그 소년을 아버지에게 돌려보냈으나, 티리다테스 자신은 '도망노예'라 부르며 인도하기를 거부하였다고 한다.
최초의 왕위 도전 시기는 기원전 32년경, 이후의 활동 시기는 기원전 26년경으로 추정되며, 그의 생몰 연대와 최후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2. 아르메니아의 티리다테스 2세 (3세기)
아르메니아의 티리다테스 2세는 아르사케스(Arsacid) 왕조 출신의 왕자로, 서기 217년부터 252년까지 아르메니아의 왕으로 재위한 인물이다. 구(舊) 아르메니아 사료에서는 그의 치세와 관련된 사건들이 '용맹한 코스로프(Khosrov the Brave)'라는 인물과 함께 서술되어 있으며, 학자들 간에 계보와 연대에 대한 이견이 존재한다.
즉위 배경: 서기 214년, 티리다테스의 아버지인 왕 코스로프 1세가 로마 황제 카라칼라(Caracalla)에 의해 체포되면서 아르메니아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카라칼라의 후임 황제 마크리누스(Macrinus)는 서기 217년 로마-파르티아 간 평화 조약의 일환으로 티리다테스를 아르메니아의 왕으로 승인하였다.
치세: 티리다테스 2세는 재위 대부분을 사산 왕조(Sasanian dynasty)와의 전쟁으로 보냈다. 약 서기 224년, 파르티아의 마지막 아르사케스 왕인 아르타바누스 4세가 사산 왕조의 아르다시르 1세에 의해 전복되면서, 그의 아르메니아 아르사케스 왕권은 로마에 더 가까워지고 사산 왕조와 대립하게 되었다. 아르다시르의 아르메니아 공격은 아르메니아 군대와 아트로파테네 연합군에 의해 격퇴된 것으로 전해진다. 또한 티리다테스는 서기 232년 시리아와 카파도키아에서 아르다시르의 공격에 대응한 로마의 군사 행동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서기 252년, 사산 왕조의 샤푸르 1세가 아르메니아를 침공하면서 티리다테스는 로마 영토로 도피하였다. 이후 아르메니아는 사산 왕조의 왕자들이 통치하게 되었다. 학자 수렌 예레미안(Suren Yeremian)에 따르면, 티리다테스는 로마가 통제하는 아르메니아의 일부 지역에서 계속 통치하다가 서기 256년 샤푸르 1세의 명령으로 암살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주장을 포함한 3세기 아르메니아 왕들의 계보와 연대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여전히 잠정적인 재구성에 그치고 있다.
주화: 일부 주화가 티리다테스 2세에게 잠정적으로 귀속되며, 이 주화들은 기원전 66/67년의 티그라네스 6세 이후 아르메니아 왕이 주조한 첫 주화이자 아르사케스 왕조의 아르메니아 왕이 주조한 유일한 주화로 평가된다. 주화의 앞면에는 머리가 화환으로 둘러싸인 모습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사산 왕조의 공격을 저지한 그의 성과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정리
'티리다테스 2세'는 고대 근동 지역의 여러 왕조(파르티아, 아르메니아)에서 나타난 명칭으로, 이름 그대로 '티리다테스'라는 이름을 가진 두 번째 왕을 의미한다. 두 인물 모두 그리스-로마 사료 및 현대 역사 연구를 통해 역사적 실존 인물로 확인되며, 파르티아 내부의 권력 다툼과 로마-파르티아-사산 왕조 사이에서 아르메니아가 겪은 복잡한 지정학적 상황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인물들로 평가된다. 단, 정확한 생몰 연대, 일부 계보 및 치세에 대한 세부 사항은 고대 사료의 한계로 인해 학술적으로 확정되지 않은 부분이 있음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