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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아농 조약

트리아농 조약(영어: Treaty of Trianon, 헝가리어: Trianoni békeszerződés)은 1920년 6월 4일 프랑스 베르사유의 그랑 트리아농 궁에서 헝가리와 연합국 사이에 체결된 조약이다. 제1차 세계 대전의 종전 후 처리 과정에서 맺어진 평화 조약의 하나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해체된 이후 독립한 헝가리 왕국의 국경을 확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조약 체결 당시 헝가리는 1918년 10월 오스트리아와의 연맹을 종료하고 사실상 독립한 상태였으나, 연합국과의 정식 평화 조약은 이 시점에 이루어졌다. 이 조약으로 헝가리는 과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절의 영토 중 약 72%를 상실하였다. 국토 면적은 325,111제곱킬로미터에서 93,073제곱킬로미터로 축소되었으며, 인구는 약 2,090만 명에서 760만 명으로 64%가 감소하였다. 헝가리인 약 1,070만 명 중 330만 명(약 31%)이 새로 확정된 헝가리 국경 외부에서 살게 되었다. 헝가리는 10대 대도시 중 5곳을 잃었고, 해상 접근권과 여러 천연 자원에 대한 접근권도 상실하여 내륙국이 되었다.

이 조약으로 영토를 획득한 주요 국가는 루마니아 왕국(트란실바니아 지역), 체코슬로바키아 제1공화국(고지 헝가리 및 카르파티아 루테니아), 유고슬라비아 왕국(보이보디나, 크로아티아-슬라보니아 일부)이다. 또한 부르겐란트 지역은 오스트리아에 편입되었고, 일부 북부 지역은 폴란드에 할당되었다.

군사적 제한 조항도 포함되었는데, 헝가리 육군은 35,000명으로 제한되었고 징병제는 폐지되었으며, 중화기, 탱크, 공군의 소유가 금지되었다. 해군은 해체되었고, 전략적 중요성으로 인해 헝가리 영토 내 복선 이상의 철도 건설도 금지되었다. 헝가리는 전쟁 배상금도 부과되었다.

트리아농 조약은 당시 미국 대통령 우드로 윌슨이 제창한 민족 자결주의 원칙에 따라 체결되었다고 공식적으로 명시되었으나, 실제로는 새 국경선이 인종적·언어적 경계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헝가리인 다수 거주 지역이 새 국경 밖으로 편입되면서 약 330만 명의 헝가리인이 소수 민족으로 인접 국가에 포함되었다. 이는 헝가리 사회에 깊은 국가적 상처로 남았으며, "Nem, nem, soha!"(절대, 절대 반대!)라는 구호 아래 조약 개정을 요구하는 수정주의 운동이 전간기 헝가리 정치의 주요 의제가 되었다.

경제적 측면에서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내에서 상호 의존적이었던 경제 구조가 국경 분할로 인해 붕괴되었다. 헝가리는 과거 경작지의 61%, 철도의 62%, 공장의 55%, 금융업의 67%를 상실하였다. 부다페스트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뻗어 있던 도로와 철도망이 국경에서 단절되어 물류 체계에 심각한 차질이 발생하였다.

1938년부터 1940년까지 나치 독일과 이탈리아의 중재로 시행된 빈 중재를 통해 헝가리는 과거 상실한 영토의 일부를 일시적으로 회복하였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1947년 파리 조약으로 이 영토들을 다시 상실하였다. 이 조약은 1921년 8월 24일 국제 연맹 조약집에 등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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