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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부누스

트리부누스(라틴어: Tribunus)는 고대 로마의 여러 관직 및 칭호를 가리키는 용어이다. 어원적으로는 라틴어로 '부족'을 뜻하는 '트리부스'(tribus)에서 유래하였으며, 원래는 부족장을 의미하는 말이었다.

로마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 트리부누스 직위는 호민관(트리부누스 플레비스, tribunus plebis)과 군사 호민관(트리부누스 밀리툼, tribunus militum)이다.

호민관(트리부누스 플레비스)은 기원전 494년경 평민 계급(플레브스)을 보호하기 위해 설치된 직위로, 매년 10명이 선출되었다. 호민관은 중재권(ius intercessionis)이라고 불리는 거부권을 행사하여 원로원이나 행정관의 결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고 부적절한 법률 제정을 거부할 수 있었다. 이는 평민의 권익을 보호하고 귀족(파트리키)의 권력을 견제하는 핵심적인 제도적 장치였다.

군사 호민관(트리부누스 밀리툼)은 로마군의 장교 계급 중 하나로, 레가투스(Legatus, 군단장)보다는 아래이고 켄투리오(Centurio, 백인대장)보다는 상위 계급에 해당하였다. 초기 로마에서는 각 군단에 6명의 트리부누스 밀리툼이 배치되었으며, 이들은 2개월마다 2명씩 교대로 군단을 지휘하였다. 공화정 시기에는 주로 귀족 및 기사 계급의 젊은이들이 정치 경력의 디딤돌로서 이 직위를 수행하였다. 기원전 311년 이후로는 로마 시민들이 트리부스회(부족 민회)에서 이들 중 일부를 선출하기도 하였다.

마리우스 군제개혁(기원전 107년) 이후 군단 전체를 통솔하는 레가투스 제도가 정착되면서, 트리부누스 밀리툼의 역할은 변화하였다. 제정 시기에는 트리부누스 라티클라비우스(Tribunus laticlavius, 넓은 띠 트리부누스)와 트리부누스 앙구스티클라비우스(Tribunus angusticlavius, 좁은 띠 트리부누스)로 구분되었다. 전자는 원로원 계급 출신으로 레가투스의 부관 역할을 하였고, 후자는 기사 계급 출신으로 주로 행정 업무를 담당하였다.

이 외에도 트리부누스라는 칭호는 집정관 권한을 가진 트리부누스 밀리툼(트리부니 밀리툼 콘술라리 포테스타테, tribuni militum consulari potestate), 재정 관련 트리부니 아이라리(tribuni aerarii) 등 다양한 지위와 계급에서 사용되었다. 트리부누스 칭호는 로마 공화정과 제정 시기를 거치며 변화를 겪었고, 군인 황제 시대를 지나 후기 로마 제국에 이르기까지 존속하였으나, 7세기 이후 점차 사용되지 않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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