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비아 전투는 이탈리아 북부의 트레비아강(트레비아강, Trebbia) 유역에서 벌어진 두 차례의 역사적 전투를 가리킨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기원전 218년에 벌어진 제2차 포에니 전쟁의 첫 대규모 전투이며, 이후 나폴레옹 전쟁 시기인 1799년에도 같은 강 유역에서 전투가 벌어졌다.
기원전 218년 트레비아 전투
기원전 218년 12월,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 바르카가 이끄는 카르타고군과 티베리우스 셈프로니우스 롱구스가 지휘하는 로마 공화정군 사이에 벌어진 전투로, 제2차 포에니 전쟁 중 이탈리아 본토에서 한니발이 거둔 첫 대규모 승리로 평가된다.
한니발은 이베리아의 사군툼을 함락한 뒤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로 진군하였다. 그 과정에서 티키누스 전투에서 로마군을 격파한 한니발은, 부상으로 회복 중이던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스키피오와 합류한 공동집정관 셈프로니우스 롱구스가 이끄는 로마군과 트레비아강 일대에서 맞섰다. 셈프로니우스는 정치적 야심과 성급한 기질로 인해 스키피오의 신중한 조언을 무시하고 조기 결전을 원했다.
전투 당일 한니발은 동생 마고에게 기병과 경보병을 주어 강변 숲에 매복시켰다. 카르타고 기병이 새벽에 로마군을 공격하자, 셈프로니우스는 휘하 기병을 추격시키고 이어 전 보병에게도 트레비아강을 건너 추격을 명령하였다. 겨울철 얼어붙은 강을 건넌 로마군은 몸이 젖어 저체온증으로 전투력이 저하되었다. 로마군 중앙의 중무장 보병은 선전했으나, 매복해 있던 마고의 부대가 측면과 후방을 공격하면서 로마군은 포위되었다. 이 전투에서 약 2만 명의 로마군이 전사하거나 포위 속에서 살육당했으며, 약 1만 5천 명만이 포위망을 돌파해 탈출한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카르타고군의 피해는 상대적으로 적었다.
이 승리 이후 한니발과의 합류를 망설이던 많은 갈리아 부족이 카르타고 편으로 돌아섰으며, 로마는 이후 한동안 한니발에게 계속 밀리게 되었다. 이 전투는 한니발의 기만 전술, 지형 활용, 매복 전략의 대표적 사례로 군사사 연구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진다.
1799년 트레비아 전투
두 번째 트레비아 전투는 1799년 6월 17일부터 20일까지 벌어진 전투로, 알렉산드르 수보로프 장군이 지휘하는 러시아 제국-신성 로마 제국 연합군과 자크 마크도날이 지휘하는 프랑스 제1공화국 군대 사이에 북부 이탈리아의 트레비아강 유역에서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연합군이 승리하였으며, 이는 나폴레옹 전쟁 시기 이탈리아 전역에서 중요한 전투 중 하나로 기록된다.
이상과 같이 트레비아 전투는 기원전 218년의 한니발 대 로마의 전투와 1799년의 연합군 대 프랑스군의 전투를 아우르는 역사적 명칭으로, 두 전투 모두 공신력 있는 역사 기록을 통해 널리 알려진 개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