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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터블 작전

트랙터블 작전(Operation Tractable)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노르망디 전역의 오버로드 작전(Operation Overlord) 일환으로, 1944년 8월 14일부터 8월 21일까지 프랑스 북부에서 수행된 연합군의 군사 작전이다. 영국 전차여단의 지원을 받은 캐나다 제1군과 폴란드 제1기갑사단이 주축이 되어, 전략적으로 중요한 팔레즈(Falaise) 마을과 그 동쪽의 트러(Trun) 및 샹부아(Chambois)를 점령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았다.

배경

1944년 7월 말 미국 제1군의 코브라 작전(Operation Cobra) 성공으로 노르망디 교두보가 돌파된 이후, 아돌프 히틀러는 연합군에 대한 반격(뤼티히 작전, Unternehmen Lüttich)을 명령했으나 실패했다. 이로 인해 독일 B집단군(당시 귄터 폰 클루게 원수가 지휘)의 상당 병력이 포위될 위기에 처했다. 이에 앞서 캐나다군은 8월 8일 토털라이즈 작전(Operation Totalize)을 개시했으나 독일군의 강력한 저항으로 팔레즈 북쪽 195고지까지 진격한 후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트랙터블 작전은 토털라이즈 작전의 교훈을 바탕으로 계획된 후속 공세였다.

작전 경과

트랙터블 작전은 8월 14일 12시, 영국 왕립공군 폭격기사령부 소속 아브로 랭커스터와 핸들리 페이지 핼리팩스 중폭격기 800대가 독일군 진지를 공습하면서 시작되었다. 다만 토털라이즈 작전 때와 마찬가지로 일부 폭격기가 목표보다 앞선 지역에 폭탄을 투하하여 폴란드군과 캐나다군 약 400명의 아군 오폭 사상자가 발생했다.

캐나다 제4기갑사단과 폴란드 제1기갑사단은 포병대의 연막 엄호 아래 진격하여 라이종 강을 도하하는 데 성공했다. 8월 16일, 캐나다 제2보병사단이 팔레즈에 진입했고, 이틀 후인 8월 18일 마을 내 독일군 저항이 완전히 소탕되었다. 이후 연합군은 트러와 샹부아 방향으로 진격을 계속했다.

8월 19일, 폴란드 제1기갑사단(스타니스와프 마체크 장군 지휘)의 전투단이 샹부아에 도착하여 이미 주둔 중이던 미군 제80보병사단 및 제90보병사단과 연결됨으로써 팔레즈 포위망(Falaise Pocket)이 부분적으로 봉쇄되었다. 이로 인해 약 15만 명의 독일군이 포위망에 갇혔다.

262고지 전투

포위망이 완전히 닫히지 않은 틈을 통해 독일군이 탈출을 시도하자, 262고지(몽오르멜, Mont Ormel)에 주둔한 폴란드 제1기갑사단 2개 전투단이 독일 제2SS기갑사단과 제9SS기갑사단의 집중 공격을 받았다. 8월 20일부터 21일까지 이어진 격전에서 폴란드군은 탄약 부족과 극심한 피로에도 불구하고 독일군의 반격을 격퇴했다. 8월 21일 오후, 제4캐나다기갑사단의 지원 부대가 도착하면서 262고지 전투는 종료되었고, 팔레즈 포위망은 완전히 봉쇄되었다.

결과 및 영향

팔레즈 포위망이 봉쇄됨에 따라 포위망 내 대부분의 독일군이 항복했다. 독일 제7군은 약 5만 명에서 20만 명에 이르는 사상자 및 포로를 기록했으며, 200대 이상의 전차, 1,000문 이상의 포, 5,000대 이상의 차량을 상실했다. 제12SS기갑사단 히틀러유겐트는 기갑 전력의 94%를 잃었다. 트랙터블 작전 기간 중 폴란드군의 사상자는 1,441명(사망 325명, 부상 1,002명, 실종 114명)으로 기록되었다. 캐나다군의 정확한 사상자 수는 토털라이즈 작전과의 연속성으로 인해 별도로 산출되지 않았으며, 두 작전을 합쳐 약 5,500명으로 추정된다.

이 작전의 성공으로 노르망디 내 독일군의 조직적인 저항은 사실상 붕괴되었고, 연합군은 파리 해방 및 센강 도하를 위한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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