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요
트라시메노호 전투(라틴어: Pugna ad Trasumennum)는 기원전 217년 4월 24일, 이탈리아 중부의 트라시메노호(Trasimeno Lake)에서 벌어진 제2차 포에니 전쟁의 주요 전투이다.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 바르카가 이끄는 카르타고군이 로마 집정관 가이우스 플라미니우스 네포스가 지휘하는 로마군을 매복 기습으로 궤멸시킨 전투로, 군사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매복 전투 중 하나로 평가된다.
배경
기원전 218년, 한니발은 알프스산맥을 넘어 이탈리아로 침공하여 티키누스 전투와 트레비아 전투에서 로마군을 연파했다. 이에 로마는 기원전 217년의 집정관으로 가이우스 플라미니우스와 그나이우스 세르빌리우스 게미누스를 선출했다. 플라미니우스는 취임식도 생략한 채 즉시 전장으로 향했다.
한니발은 두 집정관의 군대가 합류하기 전에 플라미니우스를 격파하기로 계획하고, 의도적으로 주변 지역을 약탈하며 플라미니우스를 자극했다. 플라미니우스는 결국 한니발을 추격하기 시작했고, 한니발은 트라시메노호 북쪽의 좁은 길목이 매복에 최적의 장소임을 간파했다.
전투 경과
한니발은 병력을 다음과 같이 배치했다:
- 언덕 경사면 위쪽에 이베리아·갈리아·리비아 중보병 배치
- 길 서쪽 숲속에 기병과 갈리아군 배치 (퇴로 차단)
- 길을 따라 경보병과 투창병 배치 (중앙 협공)
- 멀리서 모닥불을 피워 본대가 이미 떠난 것처럼 위장
다음날 아침, 짙은 안개 속에서 행군하던 로마군(약 30,000명)은 한니발의 매복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채 좁은 길목에 완전히 진입했다. 나팔 신호와 함께 카르타고군이 삼면에서 일제히 공격을 개시했다. 로마군은 전투 대형을 갖출 시간조차 없었고, 안개로 인해 시야가 가려진 상태에서 혼란에 빠졌다.
집정관 플라미니우스는 병사들을 독려하며 용맹히 싸웠으나, 갈리아 기병 두카리우스(일부 사료에만 등장)에게 창에 찔려 전사했다. 전투 중 큰 지진이 발생했음에도 병사들은 이를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다.
결과 및 피해
- 로마군: 약 15,000명 전사 또는 익사, 15,000명 익사(호수로 밀려남), 6,000명 생포 후 노예로 팔림, 약 2,000명만 로마로 귀환
- 카르타고군: 전사 약 1,500명, 부상 약 2,500명
전투 다음 날, 게미누스가 파견한 로마 기병 4,000명도 한니발에게 격파당했다.
영향
이 전투의 패배 소식은 로마에 큰 충격을 주었다. 로마 원로원은 퀸투스 파비우스 막시무스를 독재관으로 임명했고, 파비우스는 한니발과의 정면 회전을 피하고 보급선을 차단하는 지연전술(파비우스 전략)을 구사했다. 그러나 이 전략은 로마 시민들에게 비판받았고, 결국 기원전 216년 로마는 대규모 군대를 편성하여 한니발과 칸나이에서 결전을 벌였으나 참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