튈르리 정원(프랑스어: Jardin des Tuileries)은 프랑스 파리 1구에 위치한 공공 정원으로, 루브르 박물관과 콩코르드 광장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면적은 약 25.5헥타르에 달하며, 파리에서 가장 상징적인 공원 중 하나로 꼽힌다.
명칭의 유래
"튈르리(Tuileries)"라는 이름은 프랑스어 'tuile'(기와)에서 유래한 것으로, 이 지역이 13세기부터 기와 제조 공장이 있던 자리였기 때문에 붙여졌다. 이 기와 공장들이 있던 부지에 궁전과 정원이 조성되면서 '튈르리'라는 명칭이 사용되기 시작했다.
역사
튈르리 정원의 역사는 156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앙리 2세의 사망 이후 루브르 궁전으로 거처를 옮긴 카트린 드 메디치 왕비가 서쪽에 새로운 거주지와 정원을 조성하기로 결정하면서 시작되었다. 그녀는 피렌체 출신의 조경가 베르나르 드 카르네스를 고용하여 이탈리아 르네상스 양식의 정원을 만들었다. 초기 정원은 길이 약 500미터, 폭 약 300미터의 폐쇄된 공간으로, 직사각형 구획으로 나뉘어 잔디밭, 화단, 분수, 미로, 동굴 등으로 장식되었다.
17세기에는 루이 14세의 명으로 조경가 앙드레 르 노트르가 정원을 전면 재설계하여 프랑스식 정원(jardin à la française)의 전형적인 형태로 변모시켰다. 르 노트르는 대칭, 질서, 긴 원근감을 바탕으로 한 정원 설계를 적용했으며, 중앙의 대로(Grande Allée)와 팔각형 연못, 테라스 등을 조성했다. 1667년에는 샤를 페로의 요청으로 튈르리 정원이 일반 대중에게 개방되었는데, 이는 왕실 정원으로서는 최초의 공개 사례였다.
프랑스 혁명 시기에는 정원이 '국민 정원(Jardin National)'으로 개칭되었고, 혁명 의회가 정원 북서쪽에 있던 마네주(승마 연습장)에서 회의를 열었다. 1792년 8월 10일에는 군중이 튈르리 궁전을 습격하면서 정원에서 스위스 근위대가 학살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19세기에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튈르리 궁전에 거주하면서 정원을 개선했고, 카루젤 개선문을 건설했다. 1871년 파리 코뮌 시기에 튈르리 궁전이 방화로 소실되었으나, 정원은 보존되었다. 궁전의 폐허는 1883년에 철거되었고, 그 자리는 정원의 일부가 되었다.
주요 특징
정원은 동쪽의 카루젤 정원, 중앙의 그랑 카레(Grand Carré)와 그랑 쿠베르(Grand Couvert), 서쪽의 팔각형 연못과 테라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원 곳곳에는 17세기부터 20세기에 이르는 다양한 조각 작품들이 배치되어 있다. 특히 서쪽 테라스에는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이 전시된 오랑주리 미술관(Musée de l'Orangerie)과 현대 미술 전시관인 국립 예술 갤러리(Jeu de Paume)가 위치해 있다.
현대적 의미
튈르리 정원은 현재 루브르 박물관과 튈르리 국립 영역의 일부로 관리되고 있으며, 1914년 프랑스 역사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또한 센 강변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보호 구역에 포함되어 있다. 2024년 파리 하계 올림픽과 패럴림픽에서는 정원 중앙의 원형 연못 위에 성화대가 설치되어 주목을 받았다.
튈르리 정원은 파리 시민과 관광객 모두에게 사랑받는 대표적인 공공 공간으로, 프랑스식 정원 예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지닌 장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