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르크 샤히(페르시아어: ترک شاهیان, 영어: Turk Shahi)는 7세기 중반부터 9세기 초반까지 카불 계곡과 간다라(현재의 아프가니스탄 동부와 파키스탄 북부 지역)를 통치했던 왕조이다. 이들은 중앙아시아 기원의 통치자로, 이슬람 세력의 동방 확장을 오랫동안 저지했던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튀르크(Turk)"는 그들의 중앙아시아적 기원이나 영향력을 나타내며, "샤히(Shahi)"는 왕을 의미하는 페르시아어 단어이다.
명칭과 기원 '튀르크 샤히'라는 명칭은 그들의 지배층이 튀르크족 혈통이거나 튀르크 문화의 영향을 받았음을 시사하지만, 그들의 정확한 민족적 기원에 대해서는 학계에서 논쟁이 많다. 일부 학자들은 그들을 후기 에프탈(Hephthalite) 또는 훈족 계열로 보기도 하며, 다른 이들은 서튀르크 카간국의 분파로 본다. 이들은 사산 제국이 멸망하고 이슬람 세력이 부상하던 혼란기에 지역의 지배권을 확립했다.
역사 튀르크 샤히 왕조는 주로 간다라와 카불을 중심으로 번성했으며, 때로는 잠불리(Zabulistan) 지역까지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들은 당시 아바스 칼리프조를 비롯한 이슬람 세력의 침공에 맞서 약 2세기 동안 독립을 유지하며 완강히 저항했다. 특히 7세기 후반과 8세기 초반에는 우마이야 칼리프조의 동방 원정대와 여러 차례 충돌했으나, 험준한 산악 지형과 튀르크 샤히 군대의 강력한 저항으로 이슬람 세력은 이 지역을 완전히 정복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튀르크 샤히 왕들은 불교, 힌두교 등 다양한 종교를 관용적으로 수용했으며, 이는 당시 간다라 지역의 다문화적 특성을 반영한다. 그들의 통치기에는 불교 사원과 힌두교 사원이 공존하며 번성했다. 그들의 주화에서는 종종 불교 및 힌두교의 상징과 더불어 사산 페르시아의 영향을 받은 도상학적 요소가 나타난다.
쇠퇴와 종말 9세기 초반에 이르러 튀르크 샤히 왕조는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슬람 칼리프조의 지속적인 압력과 내부적인 문제로 인해 약화되었고, 결국 9세기 중반(정확한 시기는 자료마다 다름)에 튀르크 샤히는 힌두 샤히(Hindu Shahi) 왕조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힌두 샤히 왕조는 이전 튀르크 샤히의 통치 지역을 계승하며 계속해서 이슬람 세력에 저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