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당포성(統營 唐浦城)은 대한민국 경상남도 통영시 산양읍 당포리(삼덕리)에 위치한 고려·조선시대의 석축 산성 터이다. 1983년 8월 6일 경상남도의 기념물 제63호 '당포성지'로 지정되었다가, 2018년 12월 20일 현재의 명칭인 '통영 당포성'으로 변경되었다.
이 성은 야산 정상부와 구릉의 경사면을 이용하여 돌로 쌓은 산성으로, 2중 기단을 형성하고 있는 고려·조선시대 전형적인 석축진성(국경·해안지대 등 국방상 중요한 곳에 돌을 쌓아 만든 성)에 해당한다. 남쪽과 북쪽으로 정문 터를 두었으며, 사방에는 대포를 쏠 수 있도록 성벽을 돌출시킨 치성(雉城)이 설치되어 있다. 동문과 서문 좌우에 각각 1개, 남벽에 4개 등 모두 8개의 치성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문터에는 성문을 보호하기 위하여 성문 밖으로 쌓은 옹성(甕城)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석축의 길이는 752m, 최고 높이 2.7m, 폭 4.5m이며, 동·서·북쪽에는 망을 보기 위하여 높이 지은 망루터가 남아 있다. 전체 면적은 14,967㎡이다.
축조 시기에 관하여, 고려 공민왕 23년(1374) 왜구의 침략을 막기 위해 최영 장군이 병사와 많은 백성을 동원하여 성을 쌓고 왜구를 물리친 곳이라고 전해진다. 그러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잔존 체성의 축조 수법 및 부대시설 등을 고려할 때 조선 시대 성종 당시 축조한 남해안 지역 영진보성(營鎭堡城) 중 하나로 보는 견해도 있다. 『성종실록』 16년(1485)의 성기 심정 내용에는 둘레 1,400척, 남북으로 길쭉한 타원형 지형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성종 21년(1490) 8월에 완공된 성의 둘레는 1,445척(약 676m), 높이 13척(약 4m)이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는 임진왜란 당시인 선조 25년(1592)에 왜군에 의해 당포성이 점령당하였으나,同年 6월 2일 이순신 장군이 이를 다시 탈환하였는데, 이것이 당포승첩(당포대첩)으로 알려져 있다. 1934년에 간행된 『통영군지』에는 "산양면에 있으니 당포진의 옛터다. 둘레가 1,445척이고 높이가 13척인데 수군만호(水軍萬戶)를 두어 지켰던 곳"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1998년 6월 삼덕항 공사 현장에서는 수중 목책(나무 말뚝을 박아 만든 울타리)의 일부로 추정되는 목주 44개가 발견되어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이는 당포성의 해안 방어 시설의 일부로 추정된다.
한편, 동일한 명칭의 '당포성'이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 동이리에도 존재하나(사적 제468호 연천 당포성), 이는 임진강 북안에 위치한 삼국시대 고구려의 강안평지성으로, 통영 당포성과는 전혀 다른 별개의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