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미리스(Tomyris)는 기원전 6세기경 중앙아시아 초원 지역에서 활동한 마사게타이(Massagetae)족의 여왕이다. 마사게타이는 스키타이 계통의 유목 민족으로, 당시 아랄해 동쪽 평원과 아무다리야(옥소스 강) 유역 일대에 거주하였다.
토미리스에 관한 주요 기록은 기원전 5세기 그리스 역사학자 헤로도토스(Herodotus)의 저서 《역사》(Historiai)에 전해진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아케메네스 왕조 페르시아의 창시자 키루스 2세(키루스 대왕)가 마사게타이를 정복하려 하자 토미리스는 이를 거부하고 방어 전쟁을 벌였다. 키루스는 술을 이용한 함정으로 마사게타이 군대의 3분의 1을 격파하고 토미리스의 아들 스파르가피세스(Spargapises)를 포로로 잡았으나, 스파르가피세스는 수치심에 자결하였다. 이에 격분한 토미리스는 전군을 이끌고 두 번째 전투에서 페르시아군을 결정적으로 격파하였고, 키루스 대왕은 전사하였다. 전승에 따르면 토미리스는 키루스의 목을 베어 피가 가득 찬 부대(또는 포도주 주머니)에 넣으며 "내가 너에게 이르노니, 너의 피에 대한 갈증을 풀어 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다만 키루스 대왕의 최후에 대해서는 크세노폰(Xenophon) 등 다른 고대 저자들이 침상에서 평화롭게 사망했다는 등 상이한 기록을 남기고 있어, 헤로도토스의 기록 외에 토미리스에 대한 동시대의 독립적인 사료는 부족한 실정이다. 토미리스라는 이름은 후대 그리스인들이 붙여준 명칭이며, 사카어 원형은 *Taumuriyah(타우무리야)로 추정되는데, 이는 '씨앗', '혈통', '가족'을 의미하는 이란어 계통 어휘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르네상스 시대 유럽에서는 토미리스가 예술과 문학의 소재로 자주 등장하였다. 루벤스(Rubens), 카스타뇨(Castagno), 마티아 프레티(Mattia Preti) 등 여러 화가들이 키루스의 참수 장면을 그렸으며,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6세 1부》에서도 토미리스가 언급된다. 2016년 비디오 게임 《문명 VI》(Civilization VI)에서는 스키타이 문명의 지도자로 등장하였고, 2019년 카자흐스탄에서 영화 《토미리스》(Томирис)가 제작·개봉되었다. 카자흐스탄에서는 토미리스를 국가적 영웅으로 추대하며 기념 주화를 발행하기도 하였다. 소행성 590 토미리스(590 Tomyris)는 그녀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