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프랜시스 웨이드(Sir Thomas Francis Wade, GCMG, KCB, 1818년 8월 25일 ~ 1895년 7월 31일)는 영국의 외교관이자 중국학자(중국학자)이다. 그는 표준 중국어의 로마자 표기법인 웨이드-자일스(Wade-Giles) 표기법의 창시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 중국식 이름은 위타마(威妥玛, Wēi Tuǒmǎ)이다.
웨이드는 1818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나 해로우 스쿨을 졸업하고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수학했다. 1838년 군에 입대하여 1841년 제98보병연대와 함께 청나라로 파견되었고, 제1차 아편 전쟁에 종군하여 진강과 난징 공략 전투에 참여했다.
1845년 홍콩 대법원에서 광둥어 번역관으로 임명되었고, 1846년에는 무역 감독관 존 프랜시스 데이비스의 중국어 보조 서기가 되었다. 1852년 상하이 부영사, 1855년 홍콩 총독 존 보링의 중국어 비서관을 역임했다. 1857년 제2차 아편 전쟁 당시 엘긴 백작의 참모로 활동하며 톈진 조약(1858) 협상에 참여했고, 1860년 베이징 주재 영국 공사관의 중국어 비서관이 되었다.
1871년부터 1883년까지 주중 영국 전권공사 겸 영국 대중국 무역 총감독을 역임했다. 1870년 톈진 교안(天津教案) 이후의 어려운 협상을 주도했고, 1876년에는 이홍장(李鸿章)과 치푸 조약(Chefoo Convention)을 체결했다. 1875년 바스 훈장 2등급(KCB)을 받았고, 1889년 세인트마이클앤드세인트조지 훈장 1등급(GCMG)을 수훈했다.
40년 이상 중국에서 근무한 후 1883년 영국으로 돌아와 1886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도서관에 4,304권의 중국 문학 서적을 기증했다. 1888년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초대 중국어 교수로 선출되어 1895년 사망할 때까지 재직했다. 1887년부터 1890년까지 대영 왕립아시아학회(Royal Asiatic Society) 회장을 역임했다.
학술적 업적으로, 1867년 중국어 회화 교재 《언어자이집(語言自邇集, Yü-yen Tzŭ-erh Chi)》을 출판하여 중국어 발음을 로마자로 표기하는 혁신적인 전사 체계를 제시했다. 이 체계는 이후 허버트 자일스(Herbert Giles)에 의해 수정·보완되어 웨이드-자일스 표기법으로 발전했으며, 20세기 대부분의 기간 동안 중국어 로마자 표기의 지배적인 체계로 사용되었다. 현재는 병음(Pinyin) 체계로 대체되었으나 일부 학술 출판물과 공동체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그의 주요 저서로는 《베이징 음절표(The Peking Syllabary, 1859)》, 《언어자이집(1867)》, 《한자습서법(漢字習寫法, 1867)》, 《문건자이집(文件自趰集, Wên-chien Tzŭ-erh Chi, 1867)》 등이 있다.
웨이드는 천문학자 존 허셜의 딸인 아멜리아 허셜(Amelia Herschel)과 결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