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캐나 팬텀 킬러(Texarkana Phantom Killer)는 1946년 2월 22일부터 5월 3일까지 미국 텍사스주 보위 카운티(Bowie County)와 아칸소주 밀러 카운티(Miller County)의 경계에 위치한 텍사캐나(Texarkana) 지역에서 발생한 일련의 미해결 연쇄 살인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미상의 인물을 가리키는 명칭이다. 이 사건들은 당시 언론에 의해 "텍사캐나 문라이트 머더스(Texarkana Moonlight Murders)"로 불렸으며, 범인은 "팬텀 오브 텍사캐나(Phantom of Texarkana)", "팬텀 슬레이어(Phantom Slayer)" 등으로도 지칭되었다.
사건 개요
팬텀 킬러로 지목된 인물은 약 10주간의 기간 동안 총 8명을 공격하여 그중 5명을 살해하고 3명에게 부상을 입힌 것으로 추정된다. 공격은 주로 주말 밤에 이루어졌으며, 주로 외딴 지역에 주차된 연인들을 대상으로 하였다. 공격 간격은 약 3~4주였다.
첫 번째 공격은 1946년 2월 22일 밤, 지미 홀리스(Jimmy Hollis, 25세)와 메리 진 레이리(Mary Jeanne Larey, 19세)가 텍사캐나 외곽의 한적한 도로에 주차해 있던 중 발생했다. 흰 천 마스크를 쓴 남성이 나타나 두 사람을 공격했으며, 홀리스는 두개골 골절로 병원에 입원했고 레이리는 총기 총열로 성폭행을 당했다. 두 생존자는 범인의 키가 약 6피트(약 1.8m)였다고 진술했으나, 인종에 대한 진술은 서로 달랐다. 홀리스는 백인 남성으로, 레이리는 밝은 피부의 흑인 남성으로 보았다고 진술했다.
두 번째 공격은 3월 24일, 리처드 그리핀(Richard Griffin, 29세)과 폴리 앤 무어(Polly Ann Moore, 17세)가 차량 안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면서 드러났다. 두 사람 모두 머리 뒤쪽에 총상을 입었으며, .32구경 권총이 사용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세 번째 공격은 4월 14일, 폴 마틴(Paul Martin, 16세)과 베티 조 부커(Betty Jo Booker, 15세)가 살해된 사건이다. 두 사람은 각각 약 3.2km 떨어진 지점에서 발견되었으며, 같은 .32구경 콜트 반자동 권총이 사용되었다.
네 번째이자 마지막 공격은 5월 3일, 버질 스타크스(Virgil Starks, 37세)가 자신의 농장 주택에서 신문을 읽던 중 창문 밖에서 발사된 총에 맞아 사망한 사건이다. 그의 아내 케이티(Katie)도 같은 창문에서 발사된 총에 두 차례 얼굴을 맞았으나 생존했다. 이 사건에서는 .22구경 총기가 사용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수사 과정
수사는 시·카운티·주·연방 차원에서 진행되었다. 텍사스 레인저스(Texas Rangers)의 마누엘 T. 곤자울라스(Manuel T. Gonzaullas) 대위가 수사의 공개적 대표로 활동했다. 수사 과정에서 약 400명에 가까운 용의자가 조사되었으며, 다수의 허위 자백이 접수되었다. 현상금은 최종적으로 1만 달러 이상으로 증가했다.
주요 용의자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는 자동차 절도범이자 위조범인 유얼 스위니(Youell Swinney)가 지목되었다. 그의 아내 페기(Peggy)가 스위니가 팬텀 킬러라고 상세히 자백했으나, 이후 자백을 번복했고 배우자에 대한 증언 거부권으로 인해 법정에서 증언할 수 없었다. 스위니는 살인 혐의로 기소되지 않았으며, 상습범으로서의 자동차 절도 혐의로 장기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2014년 제임스 프레슬리(James Presley)가 저술한 저서 《The Phantom Killer》는 스위니가 범인이라는 결론을 제시했다.
그 외에도 1948년 자살한 대학생 헨리 부커 "두디" 테니슨(Henry Booker "Doodie" Tennison), 자백한 전 공군 기총사수 랄프 바우만(Ralph Baumann) 등이 용의자로 조사되었으나 모두 결정적 증거가 부족했다.
대중의 반응과 영향
이 사건은 텍사캐나 지역 주민들에게 큰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주민들은 무기를 구입하고 집에 잠금장치를 설치했으며, 상점에서는 총기와 탄약, 잠금장치가 매진되기도 했다. 사건은 전국적·국제적으로 보도되었다.
이 사건은 1976년 영화 《The Town That Dreaded Sundown》의 소재가 되었으며, 2014년 동명의 리메이크 영화가 제작되었다. 이 영화들은 이후 사건에 대한 신화와 민간 전설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사건은 현재까지 미해결 상태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