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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오다하투스

테오다하투스(Theodahad, 라틴어: Flavius Theodahatus Rex, Theodahadus, Theodatus, 약 480년 ~ 536년 12월)는 동고트 왕국(Ostrogothic Kingdom)의 제3대 국왕이다. 테오도릭 대왕(Theodoric the Great)의 조카로, 그의 어머니 아말라프리다(Amalafrida)는 테오도릭의 누이였다. 고트어 이름 "Theodahad"는 '민족(þiuda)'과 '투쟁(haþus)'이라는 요소가 결합된 것으로 추정된다.

534년, 아탈라릭(Athalaric) 왕이 사망하자 테오다하투스는 그의 사촌인 아말라순타(Amalasuintha) 여왕과 함께 동고트 왕국의 공동 통치자가 되었다. 아말라순타는 섭정의 정당성을 강화하기 위해 남성 공동 통치자로서 그를 옹립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테오다하투스는 단독 권력을 추구하여 535년 4월 30일경 아말라순타를 감금하고 살해하였다. 이는 비잔틴 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1세(Justinian I) 황제에게 고트 전쟁(Gothic War, 535~554)을 개시할 명분(casus belli)을 제공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테오다하투스는 학문에 조예가 깊었던 인물로, 플라톤(Plato)의 저작(라틴어 번역본)과 라틴 문학에 관심을 가졌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탐욕스러운 토지 확보로 악명이 높았으며, 투스키아(Tuscia, 현재의 토스카나 지역)에서 대규모 토지를 강제로 획득한 것으로 기록된다. 비잔틴 역사가 프로코피우스(Procopius)는 그의 《전쟁사》에서 테오다하투스가 이웃에 대한 폭력적 수단을 동원하여 영토를 확장했으며, 아말라순타가 그에게 부당하게 취득한 토지를 반환하도록 강제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그의 단독 통치는 짧고 혼란스러웠다. 고트 귀족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고, 벨리사리우스(Belisarius)가 지휘하는 비잔틴 군대의 초기 침공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536년 12월, 고트 귀족들에 의해 폐위되었으며, 후계자 비티게스(Witiges)의 군대를 피해 도주하던 중 암살되었다. 그의 치세는 동고트 왕국의 창시자였던 테오도릭 대왕의 길고 안정적인 통치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며, 역사적 평가는 전반적으로 부정적이다. 그의 실패는 이탈리아를 황폐화시킨 고트 전쟁을 초래하여 결국 동고트 왕국의 멸망으로 이어졌다.

테오다하투스는 구델리바(Gudeliva)와 결혼하였으며, 슬하에 아들 테우디기셀(Theudigisel)과 딸 테오데난타(Theodenantha)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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