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왕지 윤림분(太宗王旨 尹臨分)은 조선 태종 시기에 윤림(尹臨)에게 발급된 왕지(王旨) 및 관련 문서철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 제107호로 지정된 국가유산이다.
이 유산은 조선 정조 대의 문신 윤행임(尹行恁, 1762~1801)이 집안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던 선조들의 고신(告身, 임명장)을 한데 엮어 첩(帖)으로 만든 문서철이다. 원래 낱장으로 보관되던 고신 10점 가운데 현재 7점이 남아 있으며,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 '윤임윤계고신첩'이라는 이름으로 소장되어 있다.
내용 및 구성
문서첩의 첫 면에는 윤행임이 직접 "장황(粧潢)하여 가묘(家廟)에 보관하여 길이 보배로 삼고자 한다"는 취지의 제사(題辭)를 기록하였다. 수록된 문서는 태종 대에 윤임에게 발급된 고신 2점과 인조 대에 윤계(尹堦)에게 발급된 고신 8점(일부 소실)으로 구성되어 있다.
윤임의 왕지 2점의 구체적 내용은 다음과 같다.
- 1402년(태종 2) 4월 16일자: 윤임을 '가선대부 황주목사 겸 권농병마단련사'에 제수하는 왕지
- 1409년(태종 9) 2월 25일자: 윤임을 '통훈대부 인녕부 우사윤'에 제수하는 왕지
이 두 점의 고신은 첫머리에 '왕지(王旨)'라는 문구가 적혀 있고 '조선국왕지인(朝鮮國王之印)'이 안보(安寶, 날인)되어 있어, 조선 전기 고신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의 사례로 주목된다.
역사적 의의
'왕지(王旨)'라는 용어는 고려 충렬왕 대에 처음 등장하였는데, 충렬왕이 몽골 제국의 부마국 지위에 맞추어 이전에 '선지(宣旨)'라 칭하던 왕명을 '왕지'로 낮추어 부른 데서 유래하였다. 이러한 왕지는 이후 세종 대에 '교지(敎旨)'로 바뀌어 19세기 말까지 사용되었다.
이 유산은 한 문신 가문에서 조상의 고신을 가보로 여겨 첩으로 보존한 사례로, 조선 후기 전통을 창조해 나가려던 문화 현상을 보여 주는 자료로서 가치가 평가된다. 또한 태종 이방원이 정권을 잡았을 때 이에 참여한 인물들을 파악할 수 있는 역사적 자료이기도 하다. 1998년 12월 26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