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탕창국

탕창국(宕昌國)은 중국 고대 역사에서 오호 십육국 시대부터 남북조 시대에 걸쳐 존재했던 정치체이다. 기원후 417년부터 564년까지 약 150년간 존속한 것으로 기록된다. 이 정권은 중국 서북부 지역의 강족(羌族)이 세운 국가로, '탕창강(宕昌羌)'이라고도 불렸다.

지리적 위치와 규모

탕창국은 하남국(河南國)의 동남쪽, 익주(益州)의 서북쪽, 농서(隴西)의 서쪽에 위치하였다. 도성은 탕창성(宕昌城)으로, 현재의 중국 간쑤성(甘肅省) 당창현(宕昌縣) 서쪽 지역에 해당한다. 당시 중국 서북부에 분포하던 강족의 한 갈래가 세운 정권이었다.

지배 가문과 통치

탕창국의 수장 가문은 양(梁)씨였다. 양근(梁勤)이 탕창왕(宕昌王)을 자칭한 것이 시초로 기록된다. 이후 역대 왕들은 당시 중국 본토를 지배하던 남북조의 여러 정권에 조공을 바치고 책봉을 받는 방식으로 존속하였다. 예를 들어 양(梁)나라 천감(天監) 4년(505)에는 왕 양미박(梁彌博)이 감초와 당귀 등의 특산물을 바치고, 사지절 도독하량이주제군사 안서장군 동강교위 등의 관직과 농서공 탕창왕의 작위를 받았다는 기록이 《양서(梁書)》에 전한다. 양미박 사후에는 아들 양미태(梁彌泰)가 왕위를 이었다.

멸망

564년, 당시 탕창왕이었던 양미정(梁彌定)이 북주(北周)의 영역을 침범하자 북주 무제(武帝)의 분노를 샀다. 무제는 대장군 전홍(田弘)을 보내 탕창국을 토벌하였고, 그 땅에 탕주(宕州)를 설치하였다. 이로써 탕창국은 멸망하였다. 이후 수나라 시기에도 탕주 지역은 유지되었으며, 566년에는 북주가 탕주총관부를 설치하기도 하였다.

의복과 풍속

《양서》에 따르면 탕창국의 의복과 풍속은 하남국과 대략 유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구체적인 생활상이나 문화에 대한 상세한 기록은 많지 않다.

역대 군주

탕창국의 역대 군주로는 양근(417~424), 양미홀(424~460), 양호자(460~468), 양미치(468~478), 양미기(478~485), 양미박(485, 505~510), 양미힐(485~488), 양미승(488~502), 양미합(502), 양미옹(502~505), 양미태(510~525), 양헌정(525~541), 양미정(541~550, 550~564), 양노감(550)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의의

탕창국은 중국 서북부 변방 지역의 강족 세력이 남북조 시대의 분열된 정치 질서 속에서 존속한 사례를 보여주는 역사적 정권이다. 중국 정사(正史)인 《양서》 등의 사료에 그 공헌(貢獻) 기록이 남아 있어, 당시 남북조 정권과 변방 세력 간의 조공·책봉 관계를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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