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키스탄 내전은 1992년 5월 5일부터 1997년 6월 27일까지 중앙아시아 국가 타지키스탄에서 발생한 무력 분쟁이다. 소련 해체 이후 독립한 타지키스탄에서 정치적 권력 투쟁, 지역주의, 이슬람주의와 세속주의 간의 이념 대립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내전으로 발전한 사건으로, 소련 붕괴 이후 구소련 영역에서 발생한 가장 격렬한 내전 중 하나로 평가된다.
배경
타지키스탄은 스탈린 시기 설정된 국경에 따라 북부 후잔트(옛 레니나바드) 지역과 남부 지역, 동부 고르노바다흐샨 자치주 등 지역적 차이가 뚜렷한 국가였다. 소련 시기에도 북부 레니나바드 출신 엘리트들이 정권의 핵심을 차지했으며, 쿨롭 지역 출신들이 소련 내무부 등 권력 기관의 주요 직위를 점유하는 구조가 유지되었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정책 이후 타지키스탄에서는 이슬람-민주주의 성향의 정치 운동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반대 세력으로는 타지키스탄 이슬람 부흥당(IRP), 타지키스탄 민주당 등이 있었으며, 이들은 기존 공산당 엘리트들과 정치적 대립을 벌였다. 이 대립은 곧 정치적 영역을 넘어 민족·지역·클랜 단위의 갈등으로 확산되었다.
전쟁의 발발과 경과
1991년 국민투표에서 타지키스탄의 독립이 승인된 후, 1991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산당 출신 라흐몬 나비예프가 당선되었다. 그러나 이 선거 결과에 불만을 품은 야권 세력은 선거의 정당성을 부정하고 거리로 나서 시위를 벌였다. 1992년 5월, 가름 지역과 고르노바다흐샨 자치주(파미르 지역) 출신의 반정부 세력과 이슬람주의·민주주의 성향 연합이 나비예프 정권에 대항하는 무장 반란을 일으키면서 내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반정부 세력은 1992년 9월 수도 두샨베를 점령하고 대통령 관저와 방송국을 장악했으며, 나비예프 대통령은 반정부 시위대에 의해 체포되어 총구 앞에서 사임을 강요받았다. 그러나 러시아와 우즈베키스탄의 군사적 지원을 받은 인민전선(후잔트파와 쿨롭파 중심의 친정부 민병대)이 반대 공세를 펼쳐 1992년 말 반정부 연합 정부를 붕괴시켰다. 이후 쿨롭 출신의 에모말리 라흐몬이 새 정부를 이끌게 되었으며, 이는 정국의 주도권이 레니나바드에서 쿨롭으로 이양되었음을 의미했다.
1992년부터 1993년까지가 내전의 최고조로, 쿨롭 출신 민병대가 타지키스탄 이슬람 부흥당(IRP)과 파미르인, 가름인을 대상으로 두샨베 남부 지역에서 대규모 무력 행위를 벌였다. 국제 인권 단체들은 이 과정에서 파미르인과 가름인에 대한 인종 청소 성격의 행위가 자행되었다고 보고하였다. 쿠르곤텝파 지역에서는 특히 가름 출신 주민들에 대한 학살 사건이 발생했다.
반정부 세력은 아프가니스탄으로 피신하여 재정비하고 자미아티 이슬라미(Jamiat-e-Islami) 등 아프가니스탄 이슬람 세력의 지원을 받으며 저항을 계속했으며, 이후 '타지키스탄 야권 연합(UTO)'라는 통합 조직을 결성하였다. 이란도 반정부 세력을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4년에는 유엔 타지키스탄 감시단(UNMOT)이 배치되었고, 내전 초기에는 주로 남부 지역에서 전투가 벌어졌으나 1996년에는 반군이 두샨베에 주둔한 러시아군을 공격하는 등 전선이 확대되었다.
평화 협정과 결과
1997년 유엔 주도의 평화 협상이 진전되었다. 1997년 6월 27일 모스크바의 크렘린에서 에모말리 라흐몬 대통령, 타지키스탄 야권 연합 대표 사이드 압둘라 누리, 러시아 대통령 보리스 옐친이 참석한 가운데 '타지키스탄 평화와 민족 화합에 관한 총괄 협정'이 체결되면서 내전이 공식 종결되었다.
내전의 피해는 극심했다. 사망자 수는 추정치에 따라 다르지만 대체로 2만~15만 명(일부 추정치는 최대 15만 명) 사이로 평가되며, 인구의 약 10~20%가 내부 실향민이 되었다. 약 120만 명이 국내외 난민이 되었고, 타지키스탄의 물리적 기반시설과 경제는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언론인들을 표적으로 한 살해 사건도 다수 발생하여 40명 이상의 언론인이 사망하거나 국외로 탈출하는 인재 유출 현상도 나타났다.
내전 종전 이후에도 에모말리 라흐몬은 대통령직을 유지하며 장기 집권 체제를 구축했다. 1999년 대통령 선거, 이후 헌법 개정을 통한 장기 집권 기반 마련 등으로 라흐몬은 2020년대까지 집권을 지속하였다. 타지키스탄 내전은 소련 붕괴 이후 구소련 지역에서 발생한 분쟁 가운데 가장 파괴적이었던 사례 중 하나로 기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