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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지 (관직)

타이지(台吉, ᠲᠠᠶᠢᠵᠢ Tayiji, Тайж)는 몽골 귀족의 칭호이자 작위이다. 청나라 시기에는 몽골 왕공(王公)에게 공식적으로 부여된 작위 체계의 하나였다.

어원

타이지는 중국어 '태자(太子)'에서 음운이 변화하여 파생된 말이다. 몽골 제국 시기에는 칭기즈 칸과 그의 동생들의 후손, 즉 황금씨족(黃金氏族)의 구성원에게만 부여되던 칭호였다. 타이지 가운데 지위가 높은 자를 '콩타이지(琿台吉/黃台吉)'라고 하였는데, 이는 중국어 '황태자(皇太子)'의 음이 변한 것이다. 한자 문헌에서는 '태길(台吉)', '혼태길(琿台吉)', '황태길(黃台吉)' 등으로 음차 표기되었다.

북원 시기

북원(北元) 멸망 이후, 몽골 본부에서는 칭기즈 칸의 후예인 황금가문의 구성원을 타이지라고 불렀다. 다얀 칸 시기부터 대칸의 후손이 많아짐에 따라 타이지 칭호를 받는 인물도 급격히 증가하였다. 오이라트(衛拉特) 귀족층 중 칭기즈 칸의 동생 하사르의 후예는 황금씨족 구성원으로서 타이지 칭호를 사용할 자격이 있었으나, 그 외의 오이라트 귀족은 원칙적으로 타이지 칭호를 사용하지 못하였다. 다만 17세기 초부터 일부 오이라트 귀족들도 영향력 확대에 따라 타이지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하였다.

청대의 작위 체계

청나라 시기에 타이지는 몽골 귀족의 공식 작위 체계로 정비되었다. 내자사크몽골(內札薩克蒙古)과 외자사크몽골(外札薩克蒙古)의 보르지기트(博爾濟吉特)씨 가운데 칸(汗), 왕(王), 버일러(貝勒), 버이서(貝子), 공(公) 등의 왕공을 제외한 기타 귀족은 모두 타이지로 분류되었다.

타이지는 1등에서 4등까지 네 개의 등급으로 구분되었다. 순치(順治) 18년(1661), 청 조정은 타이지 직함을 1품에서 4품에 해당하는 지위로 규정하였다. 건륭(乾隆) 17년(1752)의 규정에 따르면:

  • 성년 칸(汗)과 화석친왕(和碩親王)의 아들 및 동생은 1등 타이지
  • 다라군왕(多羅郡王)과 버일러(貝勒)의 아들 및 동생은 2등 타이지
  • 버이서(貝子)와 기내(旗內) 버일러의 아들 및 동생은 3등 타이지
  • 1·2·3·4등 타이지의 자손은 모두 4등 타이지

타이지의 여러 아들 가운데 1명만이 타이지 작위를 계승하였다.

유형과 직능

타이지에는 다음과 같은 유형이 있었다:

  • 자사크(札薩克) 타이지: 기(旗)의 행정을 집행하는 타이지
  • 한산(閑散) 타이지: 집정하지 않는 타이지
  • 세습 타이지비세습 타이지

각 기의 자사크 외에, 내자사크 집정 타이지는 협리(協理, туслагч)를 포함하였는데, 협리는 자사크의 기무(旗務)를 보좌하였다. 자사크에 결원이 발생하면 협리타이지가 그 직능을 대행하였다. 이외에도 관아, 역참, 군대, 카룬(卡倫, 변경 초소), 목창(牧廠), 둔전(屯田) 등에 파견되어 임무를 수행하는 각급 타이지도 존재하였다.

특수 사례

내자사크몽골 49개 기 가운데 투머트좌익기(土默特左翼旗)와 카라친부(喀喇沁部) 두 기의 자사크는 타이지가 아니라 '타부낭(塔布囊)'이라는 칭호를 사용하였다. 이는 이들이 보르지기트씨가 아니라 칭기즈 칸의 장수였던 젤메(者勒蔑)의 후예인 우량하이(烏梁海)씨였기 때문이다.

청 조정에 귀부한 하사크(哈薩克) 부락의 '버이(貝伊)' 혹은 '비(比)'에 대해서도 타이지가 봉호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청대 이후

청 지배기에 들어서면서 타이지 칭호의 의미와 사용 범위에 변화가 발생하였다. 청나라는 몽골의 전통적인 칭호와 작위를 재편하면서 타이지를 왕(王), 버일레(貝勒), 버이서(貝子), 공(公) 다음의 작위로 자리잡게 하였다. 청대 이후에도 몽골 지역의 귀족 칭호로 일정 부분 명맥을 유지하였으나, 현대에 이르러서는 역사적 칭호로만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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