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마르 (조지아어: თამარი, 1160년경 – 1213년 1월 18일)는 1184년부터 1213년까지 조지아 왕국을 통치한 바그라티오니 왕조의 여왕이다. 그녀의 재위 기간은 조지아의 '황금 시대'로 알려져 있으며, 정치적, 군사적, 문화적으로 큰 번영을 이루었다. 강력한 통치력으로 인해 '왕 중의 왕', '여왕 중의 여왕'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조지아 정교회에서는 성인으로 추대되었다.
생애 및 즉위
타마르 여왕은 1160년경에 조지아의 국왕 게오르게 3세와 알라니아의 부르두한 여왕의 딸로 태어났다. 당시 조지아는 왕위 계승에 있어 남성 우선 원칙이 강했으나, 게오르게 3세는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타마르를 자신의 후계자로 삼고자 했다. 1178년, 그녀는 아버지 게오르게 3세에 의해 공동 통치자로 지명되었고, 왕위에 대한 정당성을 확립하기 위한 교육을 받았다.
1184년 아버지의 사망 후, 타마르는 단독으로 조지아의 왕위에 올랐다. 즉위 초기에는 강력한 귀족 세력의 반발과 왕권 약화를 시도하는 움직임에 직면했으나, 그녀는 탁월한 정치적 수완과 단호함으로 이를 성공적으로 제압하고 자신의 권력을 확립했다.
통치 및 황금 시대
타마르 여왕의 통치 기간 동안 조지아는 남캅카스와 동아나톨리아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로 부상했다. 그녀는 여러 차례의 군사적 승리를 통해 조지아의 영토를 확장하고 영향력을 넓혔다. 특히 1202년 바시안 전투에서 룸 술탄국을 격파한 것은 조지아의 군사적 위상을 크게 높인 중요한 승리였다. 또한 그녀의 통치 아래 조지아는 아르메니아 북부와 캅카스 지역의 여러 이슬람 에미르국들을 복속시키며 광대한 제국을 건설했다.
문화적으로도 타마르 시대는 조지아 문학, 예술, 건축이 절정에 달한 시기였다. 조지아의 국민 시인 쇼타 루스타벨리의 위대한 서사시 《표범 가죽을 입은 기사》(ვეფხისტყაოსანი, Vepkhistqaosani)가 이 시기에 완성되었으며, 겔라티 수도원, 바르지아 동굴 도시와 같은 중요한 종교적, 건축적 유산들이 번성했다. 타마르 여왕은 조지아 정교회를 강력히 후원하며 수도원 건립과 선교 활동을 장려했고, 이는 조지아 정교회의 황금기로 이어졌다.
타마르는 "왕 중의 왕", "여왕 중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받았는데, 이는 그녀의 탁월한 리더십과 군사적 성공, 그리고 조지아 사회에서 남성 통치자와 동등하거나 그 이상의 권위를 가졌음을 상징한다.
개인 생활
타마르 여왕은 두 번 결혼했다. 첫 번째 남편은 루스의 왕자 유리 안드레예비치였으나, 그의 방탕한 생활과 정치적 야망으로 인해 이혼했다. 이후 그녀는 알라니아의 왕자 다비드 소슬란과 재혼했으며, 그와의 사이에서 미래의 국왕 게오르게 4세 라샤와 루수단 여왕을 두었다. 다비드 소슬란은 타마르의 충실한 공동 통치자이자 군사 지도자로 활약했다.
유산
타마르 여왕은 1213년 1월 18일 사망했으며, 그 유해는 겔라티 수도원에 안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녀는 조지아 역사상 가장 위대한 통치자 중 한 명으로 기억된다. 그녀의 시대는 조지아의 정체성과 민족적 자부심의 상징이 되었으며, 후대 왕들에게 이상적인 통치자의 모델로 작용했다. 조지아 정교회에서는 5월 14일을 타마르 여왕 기념일로 지정하여 기리고 있다. 그녀의 위상은 조지아의 황금기를 대표하며, 오늘날까지도 조지아인들에게 큰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