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페아 절벽(Tarpeian Rock; 라틴어: Rupes Tarpeia 또는 Saxum Tarpeium, 이탈리아어: Rupe Tarpea)은 고대 로마 카피톨리노 언덕(Capitoline Hill) 남쪽에 위치한 가파른 절벽이다. 높이는 약 25미터이며, 로마 공화정 시기에 처형 장소로 사용된 역사적 장소이다. 살인자, 반역자, 위증자, 절도범 등이 재무관에 의해 유죄 판결을 받으면 이 절벽에서 던져져 사형에 처해졌다.
명칭의 유래는 로마 신화에서 비롯된다. 전승에 따르면, 사비니 여인들의 납치 사건 이후 로마를 공격한 사비니족과의 전쟁 당시, 카피톨리노 언덕 성채의 총독 스푸리우스 타르페이우스(Spurius Tarpeius)의 딸이자 베스타 신녀였던 타르페아(Tarpeia)가 사비니인들이 준 금 팔찌와 보석을 대가로 성문을 열어 로마를 배신했다. 그러나 사비니인들은 그녀를 방패로 짓눌러 죽였고, 시신은 절벽에서 던져졌다. 이후 그 절벽은 그녀의 이름을 따서 '타르페아 바위'로 불리게 되었다. 이 이야기는 리비우스의 《로마사》, 플루타르크 등 여러 고대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역사적으로 기원전 1세기 초 술라(Sulla) 시대까지 처형 장소로 사용되었다.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485년 반역죄로 처형된 스푸리우스 카시우스 베첼리누스(Spurius Cassius Vecellinus), 기원전 384년 소요죄로 처형된 마르쿠스 만리우스 카피톨리누스(Marcus Manlius Capitolinus), 서기 70년 처형된 시몬 바르 조라(Simon bar Giora) 등이 이 절벽에서 처형된 인물로 전해진다.
라틴어 어구 'Arx tarpeia Capitoli proxima'(타르페아 바위는 카피톨리노에 가깝다)는 권력의 정점에 있는 자가 순식간에 몰락할 수 있음을 경고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절벽에서 던져지는 것은 단순한 죽음 이상으로 수치심이라는 사회적 낙인을 동반했기 때문에, 고대 로마의 표준 처형 방법이었던 투리아눔(Tullianum) 감옥에서의 교살형보다 더 무거운 형벌로 간주되기도 했다. 주로 악명 높은 반역자들을 위해 예비된 장소였다.
현대 로마에서 타르페아 절벽의 유적 일부는 카피톨리노 언덕 남쪽, 마르켈루스 극장(Teatro di Marcello) 방향으로 남아 있으며, 관광 명소로 보존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