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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게 엘란데르

타게 프리티오프 엘란데르(스웨덴어: Tage Fritjof Erlander, 1901년 6월 13일~1985년 6월 21일)는 스웨덴의 정치가이자 국가 지도자로,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 대표와 제25대 스웨덴 총리를 지냈다. 1946년부터 1969년까지 약 23년간 총리직을 수행했으며, 이는 스웨덴 역사상 최장기 재임 기록이다. 표기상 "타게 에를란데르"로도 음역된다.

생애

베름란드주 란세테르(Ransäter) 출신으로, 아버지 에리크 구스타프 엘란데르는 교사 겸 교회 성가대 지도자였다. 집안은 가난했으며, 그의 아버지 대에 성씨를 안데르손에서 엘란데르로 바꾸었다. 1920년 룬드 대학교에 입학하여 정치학과 경제학을 전공하고 1928년 졸업했다. 재학 중 학생 정치에 활발히 참여했고 카를 마르크스의 저서를 읽으며 사회주의에 접근했다. 1928년부터 1938년까지 백과사전 《스벤스크 우플라그스보크(Svensk uppslagsbok)》 편집진으로 일했고, 1930년 아이나 안데르손과 결혼하여 두 아들을 두었다. 장남 스벤 엘란데르는 수학자로, 2001년부터 아버지의 일기를 출간했다.

1930년 룬드 시의회 의원이 되었고 1932년 국회의원(리스크다그)에 당선되었다. 1938년 사회부 국무비서관으로 임명되었으며, 1941년에는 인구위원회 의장을 맡았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스웨덴 내 수용·인턴 수용소 설치와 관련된 고위 관료 중 한 사람이었고, 1942년에는 사회부 장관 구스타프 묄러와 함께 스웨덴 거주 로마니 계통 집단(레산데 여행민)에 대한 전국적 등록 조사를 주도했다. 이 조치들의 목적과 성격에 대해서는 사료에 따라 평가가 갈린다.

1944년 무임소 장관, 1945년 교육·교회부 장관을 거쳐, 1946년 10월 페르 알빈 한손 총리의 갑작스러운 사망 후 총리와 당대표직을 승계했다. 당시 당내 표결은 각각 15대 11, 94대 72로 나뉠 만큼 그의 선출은 논란이 있었다. 그는 대체로 온건·실용주의적 성향이었고 자기풍자적 유머와 검소함으로 알려졌다.

총리 재임기(1946~1969)

취임 초 대부분 사회민주당 단독 소수정부를 이끌었으며, 1951~1957년에는 농민연맹(중앙당의 전신)과 연립정부를 구성했다. 1957년 연금제도 문제를 둘러싼 의견 대립으로 연립이 해체된 뒤에는 다시 사회민주당 단독 정부를 이끌었다. 재임 중 치른 총선에서 연속 승리했고, 1968년 총선에서는 약 50.1%를 얻어 사회민주당의 최대 승리를 기록했다.

그는 "강한 사회(det starka samhället)"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공공 부문의 확대와 복지 제도 구축을 주도했으나, 대규모 국유화는 사실상 시도하지 않았다. 주요 정책으로는 1948년 보편적 정액 연금과 아동 수당 도입, 1955년 국민건강보험 도입, 1960년 소득비례 보충연금(ATP) 시행, 1962년 9년제 의무 종합학교 도입 결정, 1965년 백만 가구 주택 건설 계획(밀리온 프로그램) 등이 있다. 재임기에 스웨덴 경제는 성장하여 세계 10대 경제국 수준에 이르렀고, 강력한 군사력과 중립 노선을 유지했다.

주요 현안으로는 1963년 스티그 벤네르스트룀 간첩 사건, 1967년 우측통행 전환(Dagen H),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침공에 대한 규탄, 미국의 베트남 전쟁에 대한 비판적 입장, 라울 발렌베리 사건에 대한 대소 교섭 등이 있었다. 핵무기 개발 문제에서는 초기에는 개발에 우호적이었으나 당내 반대로 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1968년 핵확산 금지 조약에 서명했다.

키가 192cm로 컸던 데다 재임 기간이 유별나게 길었기 때문에 "스웨덴에서 가장 긴(가장 키 큰/오래 재임한) 총리"로 불렸다. 스웨덴어 'lång'이 '긴'과 '키 큰' 두 뜻을 갖는 데서 비롯된 별칭이다. 재임 중에는 '타게'라는 애칭으로도 통했다.

퇴임과 사망

1969년 10월 총리직에서 물러났으며, 후임은 오랜 측근이자 친구였던 올로프 팔메였다. 1973년 국회의원직에서도 물러난 뒤 1972년부터 1982년까지 6권의 회고록과 일기를 출간했다. 1985년 6월 21일 폐렴과 심부전으로 향년 84세에 사망했고, 장례는 스톡홀름에서 거행된 뒤 고향 란세테르에서 치러졌다.

평가와 유산

재임 중 후반기에는 스웨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정치 지도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았으며, 사후에도 스웨덴 복지국가의 기틀을 세운 인물로 평가된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자연과학·기술·수학 분야 연구를 기리는 '타게 엘란데르 상'을 수여하고 있다. 그는 1971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지명되었으나 수상하지는 못했고, 1984년 일리스 쿠오룸 훈장을 받았다. 한편 그가 1970년대 스웨덴 모델에 대한 비판과 함께 재평가의 대상이 되었다는 점, 재임기에 사실상의 일당 지배 체제가 형성되었다는 보수·자유주의 진영의 비판도 존재한다.

참고

  • 주요 출처: 한국어 위키백과, 영어 위키백과,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Nationalencyklopedin》, Olof Ruin의 전기(1989), Dick Harrison의 전기(2017)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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