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체보(마케도니아어: Кичево, 알바니아어: Kërçovë, 튀르키예어: Kırçova)는 북마케도니아 서부에 위치한 도시이다. 비스트라 산 남동쪽 사면의 계곡에 자리하며, 오흐리드와 고스티바르 사이에 있다. 수도 스코페에서 약 112km 떨어져 있다. 키체보시(市)의 행정 중심지이기도 하다.
지리 및 행정
키체보는 북마케도니아 남서부 지역에 속하며, 키체보 지방자치체의 중심 도시이다. 도시의 면적은 약 814.3km²이며, 2021년 인구 조사 기준 도시 인구는 23,428명이다. 지방자치체 전체 인구는 2002년 기준 약 56,734명으로 집계되었다. 우편번호는 6250, 차량 등록 코드는 KI이다.
명칭의 유래
이 도시는 고대에 일리리아계 페네스타이 부족이 거주하던 곳으로, 당시에는 우스카나(Uskana)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마케도니아 왕 페르세우스 통치 시기(기원전 171~169년, 제3차 마케도니아 전쟁)에 처음 문헌에 등장한다. 이후 1018년 비잔틴 황제 바실리오스 2세의 문서에 키차비스(Kitzabis)라는 이름으로 다시 기록되었다. 현재의 이름은 슬라브계 베르지티 부족이 정착하면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된다. 알바니아어 명칭은 커르초버(Kërçovë)이며, 튀르키예어로는 크르초바(Kırçova)라고 한다.
역사
키체보는 1018년 비잔틴 제국의 문서에 언급되었으며, 11세기 오흐리드 대주교 테오필락트의 기록에도 등장한다. 이후 제1차 불가리아 제국과 제2차 불가리아 제국의 일부가 되었고, 1283년 스테판 밀루틴 치세에 세르비아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세르비아 제국이 붕괴한 뒤에는 므르냐브체비치 가문의 부카신과 그의 아들 마르코 왕자의 지배를 거쳐 오스만 제국에 편입되었다.
오스만 제국 시기에는 이 지역의 군사·행정 중심지가 되었다. 1903년 8월 2일에는 일린덴 봉기에 참여한 기독교 주민들이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불가리아 왕국이 점령했고, 1918년 이후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유고슬라비아)의 일부가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파시스트 이탈리아의 점령을 거쳐 알바니아 보호령에 편입되었으며, 이후 나치 독일이 점령했다. 1944년 11월 15일 공산 게릴라 부대가 도시를 장악하면서 해방되었다. 1945년부터 1991년까지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공화국의 일부였으며, 1991년 이후 북마케도니아 공화국의 영토가 되었다.
인구 구성
2002년 인구 조사 기준 도시 인구 27,076명 중 마케도니아인이 15,031명(55.5%)으로 가장 많았고, 알바니아인이 7,641명(28.2%), 튀르크인이 약 2,406명(8.9%), 로마인이 4.9%를 차지했다. 종교적으로는 정교회 신자가 55.9%, 이슬람교 신자가 43.4%였다. 2021년 인구 조사에서는 총 23,428명으로 집계되었으며, 마케도니아인 54.2%, 알바니아인 21.8%, 튀르크인 8.8%, 로마인 7.6%로 나타났다.
문화 및 유적
키체보 인근에는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된 성 보고로디차 프레치스타 수도원이 있다. 이 수도원은 중세 시기에 크르닌스키 수도원으로 알려졌으며, 기독교인과 이슬람교도가 함께 방문하는 공동 성지로 유명하다. 이는 수도원 내부의 샘물이 기적적인 효력이 있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또한 성 게오르기우스 수도원과 오스만 제국 시기의 여러 모스크가 남아 있다.
스포츠
지역 축구 클럽으로 FK 나프레독이 있으며, 북마케도니아 1부 리그에서 여러 시즌을 보낸 바 있다. 알바니아계 클럽인 KF 벨라제리미 77은 현재 3부 리그에서 활동 중이다.
주요 인물
축구 선수 베사르트 이브라이미, 화가 오메르 칼레시, 가수 칼리오피, 정치인 알리 아흐메티 등이 키체보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