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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프턴 현수교

클리프턴 현수교(Clifton Suspension Bridge)는 영국 잉글랜드 브리스틀(Bristol)에 위치한 현수교로, 에이번 협곡(Avon Gorge)과 에이번 강(River Avon)을 가로지르며 클리프턴(Clifton) 지역과 노스서머싯(North Somerset)의 리우즈(Leigh Woods)를 연결한다. 이 교량은 1864년 개통 이후 현재까지 유료 교량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통행료 수입은 교량 유지 관리에 사용된다.

설계 및 건설

클리프턴 현수교의 최초 설계는 빅토리아 시대의 저명한 기술자 이점바드 킹덤 브루넬(Isambard Kingdom Brunel)이 1831년에 수립하였다. 그러나 자금 부족과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공사가 여러 차례 중단되었다. 브루넬은 1859년에 사망하여 교량이 완공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이후 1860년에 런던의 헝거퍼드 현수교(Hungerford Suspension Bridge)가 철거되면서 그 체인이 클리프턴으로 옮겨져 재사용되었다. 최종 설계는 윌리엄 헨리 발로(William Henry Barlow)와 존 호크쇼(John Hawkshaw)가 브루넬의 초기 설계를 바탕으로 수정하여 완성하였다. 이들은 교량의 데크를 더 넓고 높고 견고하게 만들었으며, 이중 체인 대신 삼중 체인을 사용하였다.

규모 및 제원

클리프턴 현수교의 전체 길이는 412m(1,352ft)이며, 주경간 길이는 214.05m(702ft 3in)이다. 교량 폭은 9.45m(31ft)이고, 만조 수면 위 높이는 101m(331ft)이며, 데크 위 타워 높이는 26m(86ft)이다. 교량 하부의 여유 높이는 만조 수면 위 75m(245ft)로, 당시 해군성(Admiralty) 규정에 따라 높은 돛대를 가진 군함의 통과가 가능하도록 설계되었다. 교량의 무게(체인, 로드, 거더, 데크 포함)는 약 1,500톤에 달한다.

역사적 배경

에이번 협곡에 다리를 건설하려는 구상은 1753년 브리스틀의 상인 윌리엄 빅(William Vick)이 유언으로 1,000파운드를 기탩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1829년에 설계 공모전이 열렸고, 22명의 설계자가 응모하였으며, 브루넬이 최종 선정되었다. 1831년 착공되었으나 1831년 브리스틀 폭동(Bristol riots)으로 공사가 중단되었고, 이후 재개되었으나 1843년 자금 고갈로 다시 중단되었다. 브루넬 사후인 1860년대에 자금이 다시 마련되어 1864년에 최종 완공되었다. 최초 기공식에서 완공까지 111년이 소요된 셈이다.

운영 및 관리

클리프턴 현수교는 1952년부터 클리프턴 현수교 트러스트(Clifton Suspension Bridge Trust)라는 자선 재단이 관리하고 있다. 차량 통행료는 2014년부터 1파운드로 부과되고 있으며, 보행자와 자전거 이용자는 무료이다. 연간 약 400만 대의 차량이 이 다리를 통과한다. 이 교량은 영국에서 1등급 등재 건물(Grade I listed building)로 지정되어 있으며, B3129 도로의 일부를 구성한다.

문화적 의의

클리프턴 현수교는 브리스틀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랜드마크로, 각종 엽서와 홍보 자료에 자주 사용된다. 1979년 4월 1일에는 옥스퍼드 대학의 위험 스포츠 클럽(Dangerous Sports Club)이 이 다리에서 세계 최초의 현대적 번지 점프를 시행하였다. 2003년 11월 26일에는 마지막 콩코드(Concorde 216) 여객기가 이 다리 위를 비행한 후 필튼 비행장에 착륙하였다. 2012년에는 런던 올림픽 성화 봉송이 이 다리를 통과하였다.

사건 및 안전

클리프턴 현수교는 자살 시도가 빈번한 장소로도 알려져 있으며, 1998년에는 자살 방지용 장벽이 설치되었다. 설치 전 연평균 8명이던 자살 사망자가 설치 후 연평균 4명으로 감소하였다. 1885년에는 사라 앤 헨리(Sarah Ann Henley)라는 22세 여성이 이 다리에서 투신했으나 치마가 낙하산 역할을 하고 진흙탕에 착지하여 생존한 사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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