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이스테네스(그리스어: Κλεισθένης, 라틴어: Cleisthenes, 기원전 570년경~기원전 508년경)는 고대 아테나이(아테네)의 정치가이자 법제 개혁자로, 아테네 민주정의 기초를 마련한 인물로 평가된다. 역사가들은 그를 '아테네 민주주의의 아버지'로 지칭한다.
출신 배경
클레이스테네스는 아테네의 명문 귀족 가문인 알크메오니다이(Alcmaeonidae) 가문 출신이다. 아버지는 메가클레스(Megacles), 어머니는 시퀴온(Sicyon)의 참주였던 클레이스테네스의 딸 아가리스테(Agariste)이다. 외조부의 이름을 따서 클레이스테네스라 명명되었다. 그의 누이 아가리스테는 크산티포스와 결혼하여 아테네의 유명한 정치가 페리클레스(Pericles)를 낳았으므로, 클레이스테네스는 페리클레스의 외삼촌이 된다.
역사적 배경과 집권 과정
기원전 510년, 스파르타의 지원을 받은 클레이스테네스와 알크메오니다이 가문은 아테네의 참주 히피아스(Hippias)를 축출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후 스파르타 왕 클레오메네스 1세는 이사고라스(Isagoras)를 앞세워 친(親)스파르타 과두정을 수립하려 하였고, 이에 클레이스테네스는 일시적으로 추방되었다. 그러나 아테네 시민들이 이사고라스의 권력 독점에 저항하면서 클레이스테네스는 다시 소환되어 아테네의 지도자로 복귀하였다.
개혁 내용
클레이스테네스는 기원전 508년/507년경 일련의 정치 개혁을 단행하였다.
첫째, 기존의 혈연 중심 4부족제를 폐지하고 거주 지역에 기반한 10부족제(phylae)를 신설하였다. 각 부족은 다시 도시 지역(asty), 해안 지역(paralia), 내륙 지역(mesogeia)의 세 구역(trittyes)으로 나뉘었으며, 그 하위 단위로 데모스(demos, 행정 촌락)가 설치되었다. 이는 혈연과 지연에 기반한 전통 귀족 세력을 약화시키고 지역적 대표성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였다.
둘째, 솔론(Solon)이 창설한 400인 평의회(Boulē)를 500인 평의회로 확대 개편하였다. 500인 평의회는 10개 부족에서 각각 50명씩 선출되었으며, 민회(Ekklēsia)에 제출할 법안을 준비하고 행정을 통제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셋째, 도편추방제(ostracism)를 도입하였다. 이는 참주가 출현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매년 한 차례 시행되었으며, 6,000표 이상이 특정 인물의 이름이 적힌 도자기 조각(ostrakon)에 투표되면 해당 인물을 10년간 아테네에서 추방하는 제도였다. 추방된 자의 재산은 몰수되지 않았다.
넷째, 모든 시민에게 평등한 참정권(isonomia, 법 앞의 평등)을 부여하고, 관직 선출에 추첨제(sortition)를 도입하였다. 또한 가문명 대신 데모스명을 사용하도록 하여 시민들의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였다.
역사적 의의
클레이스테네스의 개혁은 아테네 정치 체제를 귀족 과두정에서 민주정으로 전환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는 자신의 개혁을 '데모크라티아(demokratia)'보다는 '이소노미아(isonomia, 법적 평등)'라고 불렀으나, 이후 아테네 민주정의 기본 골격은 그의 개혁에 기초하여 발전하였다. 그의 사후 생애에 대해서는 현존하는 고대 문헌에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