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온(고대 그리스어: Κλέων, 현대 그리스어: 클레온)은 기원전 5세기 고대 아테네의 주요 정치인이자 장군이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기원전 431년 ~ 기원전 404년) 시기에 활동했으며, 특히 페리클레스 사망(기원전 429년) 이후 아테네 민주정의 대중 선동가(데마고그)로 부상하여 강경한 대외 정책을 주도했다.
생애 및 정치적 부상
클레온은 부유한 무두장이 가문 출신이었으나, 전통적인 귀족 가문 출신은 아니었다. 페리클레스가 사망하고 아테네에 역병이 창궐하며 사회가 혼란스러워지자, 클레온은 대중의 분노와 불만을 이용하여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했다. 그는 기존의 온건파 정치인들과 달리 대중 집회에서 강력하고 직설적인 연설로 군중을 사로잡았으며, 종종 과격하고 비타협적인 정책을 옹호했다.
그는 특히 스파르타와의 전쟁에서 강경한 입장을 취했으며, 반란을 일으킨 미틸레네 시민들을 가혹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강경파를 대변했다. 또한, 동맹 도시들로부터 거두는 공물을 인상하는 정책을 지지하여 아테네의 재정을 강화하려 했다.
군사적 활동 및 사망
클레온의 군사적 경력 중 가장 유명한 사건은 기원전 425년 필로스 해전 및 스파크테리아 전투에서의 승리이다. 이 전투에서 아테네군은 스파르타군을 포위하여 항복을 받아냈고, 이는 당시 아테네에 큰 사기를 불어넣었다. 클레온은 이전에는 군사적 경험이 거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승리를 통해 대중적 명성을 크게 얻었다.
그러나 기원전 422년, 그는 마케도니아 북부 암피폴리스에서 스파르타의 명장 브라시다스와의 전투 중 전사했다. 이 전투에서 브라시다스 역시 전사하여 양측 모두에게 큰 손실이 되었으며, 이는 전쟁의 일시적인 휴전인 니키아스 평화(기원전 421년)가 체결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역사적 평가
클레온은 동시대 역사가 투키디데스와 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에 의해 비판적으로 묘사되었다.
- 투키디데스: 그의 저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클레온을 무모하고 선동적인 인물로 그렸으며, 그의 정책이 아테네에 해를 끼쳤다고 암시했다. 특히 필로스 전투에서의 그의 성공을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깎아내리기도 했다.
-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기사들(The Knights)』에서 클레온을 노골적으로 조롱하며, 그를 무식하고 비열하며 권력에 굶주린 인물로 풍자했다. 아리스토파네스는 클레온을 '파플라곤(Paflagōn)'이라는 별칭으로 불렀는데, 이는 '퍼뜨리는 사람' 또는 '매 맞는 자'라는 이중적 의미를 담고 있다.
이러한 부정적인 묘사는 후대에 클레온의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으나, 현대 역사가들은 투키디데스와 아리스토파네스가 클레온의 정치적 적수였음을 고려하여 보다 균형 잡힌 시각으로 그를 평가하려 노력한다. 클레온은 분명 대중 선동가적 기질이 있었으나, 동시에 아테네의 국익을 위해 강력한 정책을 추진했던 유능한 정치인이었다는 재평가도 존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클레온은 펠로폰네소스 전쟁 중 아테네 민주정의 한 단면, 특히 대중의 감정에 호소하는 새로운 형태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중요한 인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