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안드리다스(Cleandridas, 그리스어: Κλεανδρίδας) 또는 클레안드리데스(Κλεανδρίδης)는 기원전 5세기 고대 스파르타의 장군이자 정치가이다. 그는 스파르타의 아기아다이 왕가에 속한 어린 왕 플레이스토아낙스의 고문으로 활동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플루타르코스의 기록에 따르면, 클레안드리다스는 기원전 446년경 스파르타가 아테네의 아티카 지역을 침공할 당시 왕 플레이스토아낙스를 보좌하였다. 그러나 그는 아테네의 지도자 페리클레스로부터 뇌물을 받고 공격을 중단시킨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플레이스토아낙스와 클레안드리다스는 모두 스파르타에서 추방되었다(기원전 446~444년 사이로 추정). 플레이스토아낙스는 이후 스파르타로 복귀할 수 있었으나, 클레안드리다스는 부재 중 사형이 선고되었다(플루타르코스, 《페리클레스 생애》 제22장).
추방 이후 클레안드리다스는 이탈리아 남부의 그리스 식민 도시 투리오이(Thurii)로 망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대 사료에 따르면 그는 투리오이의 군대를 지휘하여 타라스(오늘날의 타란토)와의 전쟁(기원전 444/443년경)에서 활약하였다.
클레안드리다스는 당대에 전략가로서 능력을 인정받은 인물로 평가된다. 2세기경의 저술가 폴리아이노스(Polyaenus)는 클레안드리다스가 적국인 테게아 사람들 사이에 그들의 지도자들이 스파르타로부터 뇌물을 받았다는 허위 정보를 퍼뜨려 적 내부의 분열을 유도하는 지략을 부렸다고 기록하였다.
그의 아들은 시칠리아 원정에서 아테네 군대를 격파한 것으로 유명한 스파르타 장군 길리포스(Gylippus)이다.
주요 사료로는 플루타르코스의 《페리클레스 생애》와 폴리아이노스의 저작 등이 있으며, 현대 학계에서는 기원전 5세기 스파르타-아테네 관계와 페리클레스의 외교 전략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인물로 다루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