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망틴 도를레앙(프랑스어: Clémentine d'Orléans, 본명: 마리 클레망틴 레오폴딘 카롤린 클로틸드 도를레앙, 1817년 6월 3일 ~ 1907년 2월 16일)은 프랑스 왕국 출신의 왕족으로, 루이필리프 1세 국왕과 마리아 아말리아 디 보르보네-두에 시칠리에 왕비의 막내딸이다. 그녀는 벨기에 왕비 루이즈 도를레앙의 여동생이며, 불가리아 왕국의 초대 차르(왕)인 페르디난트 1세의 어머니이다.
생애 초기
1817년 6월 3일 프랑스 뇌이쉬르센의 뇌이 성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루이필리프가 1830년 7월 혁명 이후 프랑스 국왕으로 즉위하면서 그녀는 프랑스 왕녀(Princess of Orléans)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역사학자 쥘 미슐레에게 역사를 배웠으며, 젊은 시절부터 아름다움과 교양을 갖춘 인물로 알려졌다.
결혼
1843년 4월 20일 프랑스 생클루 성에서 작센코부르크고타 가문의 아우구스트 공자(Prince August of Saxe-Coburg and Gotha)와 결혼하였다. 이 혼인은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1세(그녀의 형부)가 주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우구스트 공자는 오스트리아 군대에서 복무하고 있었으나, 결혼 후 프랑스로 거처를 옮겼다. 슬하에 3남 2녀를 두었다.
1848년 혁명과 이후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으로 아버지 루이필리프 1세가 퇴위하고 왕정이 붕괴되자, 클레망틴과 그 가족은 프랑스를 떠나 영국, 이후 코부르크, 빈 등지로 망명하였다. 그녀는 나폴레옹 3세가 오를레앙 가문의 재산을 몰수한 것에 반발하여 프랑스 언론에 편지를 보내는 등 상속 재산 반환을 위한 캠페인을 벌였다.
불가리아 왕위와 말년
클레망틴은 자신의 아들 페르디난트가 불가리아의 공작(뒤이어 차르)으로 선출되도록 적극적으로 외교적 활동을 펼쳤다. 불가리아에 정착한 후에는 막대한 개인 재산을 활용하여 철도 건설(400만 프랑 기부), 맹인 학교, 클리멘틴스카야 병원 건립, 불가리아 적십자 창설 등 공공 및 자선 사업을 지원하였다. 이로 인해 불가리아 사회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나이가 들면서 난청이 심해져 큰 귀 나팔에 의존하게 되었다. 1907년 2월 16일 독일 제국 영토였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빈에서 폐렴 합병증으로 사망하였으며, 코부르크의 성 아우구스틴 교회에 안장되었다. 향년 89세로, 루이필리프 1세의 자녀들 중 가장 오래 생존하였다.
평가
당대 유럽 왕실에서 "가장 총명한 왕족 여성 중 한 명"으로 평가되었으며, 정치와 외교에 대한 뛰어난 식견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그녀의 묘비에는 페르디난트 1세가 차르 즉위 후 새긴 "왕의 딸이자, 스스로 왕비가 되지는 못했으나 왕의 어머니"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