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라크(러시아어: кула́к, IPA: [kʊˈlak], 문자 그대로 '주먹' 또는 '주먹을 쥔 사람'이라는 뜻)는 러시아 제국 말기와 소련 초기에 부유한 농민 계층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이들은 토지, 가축, 농기구 등 생산 수단을 상당 부분 소유하고 고용 노동력을 사용하여 농장을 경영하는 농민들을 의미했다.
역사적 배경 및 정의 러시아 제국 시기에는 '쿠락(кулак)'이라는 단어가 고리대금업자나 부유한 농민을 비하하는 속어로 사용되었으나,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볼셰비키 정권이 수립되면서 계급 투쟁의 관점에서 명확한 계층으로 정의되었다. 소비에트 정권은 농민을 프롤레타리아트(농업 노동자, 바트라크), 빈농(베드냐크), 중농(세레드냐크), 부농(쿨라크)의 네 계층으로 분류하였으며, 쿨라크는 '착취자' 계급으로 규정되었다.
탈쿨라크화 (라스크쿨라치바니예) 소련 정권은 농업 집단화(콜호즈 및 소프호즈 설립)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쿨라크를 주요 장애물로 간주했다. 1929년 이오시프 스탈린은 "쿨라크를 계급으로서 청산한다"는 방침을 발표하고, 강제적인 집단화와 더불어 '탈쿨라크화(раскулачивание)' 정책을 전면적으로 실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쿨라크로 분류된 농민들은 토지와 재산을 몰수당했으며, 크게 세 범주로 나뉘어 처우되었다.
- 제1범주 (반혁명 분자): 즉결 처형 또는 강제 수용소(굴라그) 수감.
- 제2범주 (부유한 농민): 재산 몰수 후 북부, 시베리아, 중앙아시아 등지의 외딴 지역으로 강제 이주(추방).
- 제3범주 (그 외 부농): 거주 지역에서 쫓겨나 열악한 토지로 이주.
결과 및 영향 탈쿨라크화는 1930년대 초반 소련 전역에서 대규모 기근(특히 우크라이나의 홀도모르, 카자흐스탄 기근 등)을 초래한 주요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숙련된 농업 경영층이 제거되고 강제 집단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농업 생산성이 급격히 저하되었기 때문이다. 역사학자들은 이 정책으로 인해 수백만 명이 사망하거나 강제 이주당한 것으로 추정한다.
역사적 평가 쿨라크 개념은 소련사의 중요한 논쟁점이다. 소련 공식 사학에서는 쿨라크를 착취 계급으로 규정하고 청산을 정당화했으나, 서방 및 탈소련 사학계에서는 국가 주도의 폭력적 계급 청산이자 농업 파탄의 주범으로 평가한다. 현대 러시아 사학계에서도 이 시기를 정치적 탄압과 비극의 역사로 인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