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르만잔 닷카(키르기스어: Курманжан Датка, 러시아어: Курманжан Датка, 1811년 ~ 1907년 2월 1일)는 키르기스스탄 알라이(Alai)족의 여성 지도자이자 통치자이다. '알라이산맥의 여왕', '남부의 여왕', '국가의 어머니'라는 별명으로도 알려져 있다.
생애 초기
쿠르만잔은 본명이 쿠르만잔 마마트바이 키지(Курманжан Маматбай Кызы)로, 1811년 코칸트 칸국(Kokand Khanate) 영역이었던 알라이산맥의 오로크 마을(현재 키르기스스탄 오시주)에서 유목민 가문의 딸로 태어났다. 18세 때 부모가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남성과 결혼시키려 하자, 쿠르만잔은 전통을 깨고 신랑의 유르트에서 탈출하여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와 3년간 머물렀다.
권력 장악
1832년, 부유한 알라이족의 영주(베크)였던 알림베크(Alimbek)가 쿠르만잔을 아내로 맞이하였다. 알림베크는 쿠르만잔의 후원자이자 조언자 역할을 하였으며, 두 사람은 29년간 결혼 생활을 유지하며 5명의 아들을 두었다. 1862년 코칸트 칸국의 궁정 쿠데타 과정에서 알림베크가 함정에 빠져 사망하자, 알라이족의 지도권은 50세가 된 쿠르만잔에게 넘어갔다.
쿠르만잔은 약 10,000명의 기병으로 구성된 충성스러운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코칸트 칸국의 후다야르 칸(Khudayar Khan)이 알라이 키르기스인들에게 세금 부과를 시도하자, 쿠르만잔은 이에 맞서 자신을 알라이족의 통치자로 인정하고 '닷카'(Dатка, 장군 또는 통치자를 의미하는 칭호)라는 칭호를 부여할 것을 요구하였다. 후다야르 칸은 이를 받아들였으며, 부하라 토후국의 에미르 무자파르 빈 나스룰라(Muzaffar bin Nasrullah) 역시 쿠르만잔을 알라이족의 통치자로 인정하고 '닷카' 칭호를 부여하였다. 이는 중앙아시아와 이슬람 세계 동부에서 여성에게 공식적으로 '닷카' 칭호가 부여된 첫 사례로 평가된다.
러시아 제국과의 관계
1876년 러시아 제국 군대가 코칸트 칸국을 침공하여 점령하였다. 쿠르만잔은 다섯 아들과 함께 알라이산맥 지역에서 러시아 군대에 저항하였다. 1876년 4월 25일, 키르기스인 부대와 러시아 제국 군대 간의 첫 대규모 전투가 발생하였으나, 상당한 손실을 입은 알라이 키르기스인들은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미하일 스코벨레프(Mikhail Skobelev) 장군이 쿠르만잔과 협상을 진행하였다. 쿠르만잔은 아들들에 대한 사면과 러시아령 투르키스탄의 새 총독직 임명을 조건으로 알라이 키르기스인 영토의 러시아 제국 합병에 동의하였고, 이에 따라 러시아 제국 육군 대령 계급을 부여받았다. 러시아 제국에 편입된 이후 알라이산맥에는 5개의 볼로스티(행정구역)가 형성되었으며, 그중 4곳은 쿠르만잔의 아들들이 통치하였다.
말년과 유산
1893년, 쿠르만잔의 아들 캄치베크(Kamchybek)가 밀수 및 세관원 살해 혐의로 체포되었고, 1895년 3월 3일 오시 중앙 광장에서 쿠르만잔이 지켜보는 가운데 교수형에 처해졌다. 이 사건 이후 쿠르만잔은 은둔 생활에 들어갔다. 러시아의 니콜라이 2세 황제는 쿠르만잔에게 다이아몬드와 장미로 장식된 금색 여성 시계 등 특별 선물을 보냈다.
1906년, 훗날 핀란드의 국가원수를 역임한 칼 구스타프 에밀 만네르헤임(Carl Gustaf Emil Mannerheim) 남작이 쿠르만잔을 방문하여 사진을 촬영하였다. 쿠르만잔은 1907년 2월 1일 오시 인근 마디(Mady) 마을의 자택에서 9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으며, 처형된 아들 캄치베크의 무덤 옆에 안장되었다.
평가와 기념
쿠르만잔 닷카는 코칸트 칸국, 청나라, 러시아 제국 사이의 복잡한 지정학적 상황 속에서 외교적 수완을 발휘하여 민족의 생존을 도모한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그녀의 초상화는 키르기스스탄의 50솜 지폐 앞면에 세 차례에 걸쳐 게재되었다. 비슈케크와 오시 등 주요 도시에는 쿠르만잔 닷카의 이름을 딴 거리와 동상이 조성되었다. 2014년에는 사디크 셰르니야스(Sadyk Sher-Niyaz) 감독의 역사 서사시 영화 《쿠르만잔 닷카》(Kurmanjan Datka)가 제작되어 제87회 아카데미상 외국어 영화상 부문에 키르기스스탄 대표로 출품되었다. 2011년은 키르기스스탄 정부에 의해 '쿠르만잔의 해'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