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쾰른의 브루노

쾰른의 브루노(라틴어: Sanctus Bruno, 1030년경~1101년 10월 6일)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인이자 수도사제이며, 카르투시오 수도회(Ordo Cartusiensis)의 창설자이다.

출생과 교육

브루노는 1030년경 신성로마제국의 도시 쾰른(오늘날 독일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서 명문 귀족 가문인 하텐파우스 가문의 아들로 태어났다. 쾰른의 성 쿠니베르토 학교에서 초기 교육을 받은 후 프랑스 랭스(Reims)로 건너가 주교좌성당 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였다. 1055년경 쾰른으로 돌아와 학업을 마치고 사제로 서품되었으며, 1056년 다시 랭스로 가서 신학교 교수와 학장을 역임하였다(1074년까지 재직). 그의 제자 중에는 후에 교황 우르바노 2세가 된 오도 드 라주리가 있었다.

랭스 교구 사무처장과 갈등

1075년 브루노는 랭스 교구의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사무처장으로 위촉되었다. 그러나 당시 랭스 교구장 마나세스는 부덕하고 권력에 아첨하는 성향이 있었고, 이에 브루노와 성직자들은 마나세스를 오탕 교회회의에서 성무정지 처분을 받게 하고 교구장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였다. 마나세스는 이에 보복하여 브루노의 집을 공격해 파괴하고 재산을 강제로 빼앗았다.

카르투시오 수도회 창설

브루노는 일찍이 두 친구와 함께 세속적 이익을 포기한다는 서약을 한 바 있었다. 마나세스 사태 이후, 랭스 교구민들이 그에게 대주교직을 제안하였으나 이를 거절하고 은수 생활을 결심하였다. 몰렘의 성 로베르토(후일 시토 수도회 창립자)의 조언을 따라 1084년 6명의 동료와 함께 프랑스 그레노블 교구로 이동하였다. 당시 그레노블 교구장이었던 샤트뇌프의 성 후고의 후원으로 그들은 샤르트뢰즈(Chartreuse) 산악 지대에 정착하여 작은 성당과 개인 초막을 짓고 기도와 묵상, 학업에 전념하였다. 이것이 카르투시오 수도회의 시작이며, 이들은 성 베네딕토의 규칙을 엄격히 준수하였다.

교황 우르바노 2세와의 관계 및 만년

1088년 제자 오도 드 라주리가 교황 우르바노 2세로 선출되자, 교황은 스승이었던 브루노를 1090년 로마로 불러들여 조언자로 삼았다. 그러나 브루노는 교황청 내 당쟁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극소수의 사람들만 접촉하며 배후에 머물렀다. 제1차 십자군 원정이 호소된 클레르몽 교회회의에도 참석하지 않았다.

하인리히 4세 황제의 군대 위협으로 교황청이 남쪽으로 피신하던 중, 브루노는 이탈리아 칼라브리아 지역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교황이 레조칼라브리아의 대교구장직을 제안하였으나 브루노는 이를 거절하고, 1091년 스퀼라체 교구의 외딴 골짜기(오늘날 세라 산 브루노)에 새로운 은수처를 마련하였다. 이 자리는 시칠리아와 칼라브리아의 백작 루제로 1세의 후원으로 마련되었으며, 1095년에는 성 스테파노 수도원이 세워졌다.

선종과 시성

브루노는 교황 우르바노 2세(1099년 선종), 첫 동료 랑됭(1100년 선종), 후원자 루제로 1세(1101년 선종) 등 가까운 이들을 차례로 떠나보낸 후, 1101년 10월 6일 칼라브리아의 은수처에서 선종하였다.

브루노는 공식적인 시성식을 통해 성인으로 선포되지는 않았다. 1514년 교황 레오 10세가 카르투시오회 내에서 그를 공경하는 것을 인가하였고, 이후 1623년 2월 17일 교황 그레고리오 15세에 의해 교회 전체로 그 공경이 확대되었다. 축일은 10월 6일이며, 칼라브리아 지역의 수호성인으로도 공경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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