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먼 알렉산더 영(Coleman Alexander Young, 1918년 5월 24일 ~ 1997년 11월 29일)은 미국의 정치인으로, 1974년부터 1994년까지 20년간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시장을 지낸 인물이다. 그는 디트로이트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시장이었으며, 디트로이트 현대사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하나로 평가된다.
생애 초기와 교육
영은 앨라배마주 터스컬루사에서 태어났다. 부친 윌리엄 콜먼 영은 세탁업자였고, 모친은 아이다 리즈 존스였다. 1923년 가족은 미국 남부에서 북부 산업 도시로 이주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의 대규모 이동(흑인 대이동)의 일환으로 미시간주 디트로이트로 이주하였다. 1935년 이스턴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전미 자동차 노동조합(UAW)에 가입하였고, 포드 자동차 회사와 미국 우정공사에서 근무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 복무
제2차 세계 대전 동안 영은 미국 육군 항공대에서 소위, 폭격수, 항해사로 복무하였다. 그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조종사들로 구성된 유명한 터스키기 에어멘(Tuskegee Airmen)의 일원이었다. 1945년에는 인디애나주 시모어 인근 기지에서 인종적 분리에 항의한 162명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장교들이 체포된 프리먼 필드 사건에 연루되었다.
민권 운동과 초기 정치 활동
1940년대와 1950년대에 영은 노동자 권리와 인종 평등을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52년에는 매카시 시대의 비미 활동 위원회(HUAC) 청문회에 출석하여 공산당원 여부에 대한 질문에 답변을 거부하고, 대신 미국 남부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투표권을 박탈당하고 있는 현실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이 발언은 디트로이트의 흑인 공동체에서 그를 영웅으로 만들었다.
1960년 미시간주 신헌법 초안 작성을 위한 대의원으로 선출되었고, 1964년 미시간주 상원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상원 재임 기간 동안 공공 부문 노동조합과 지방자치단체 간 분쟁의 중재를 요구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는 데 기여하였다.
디트로이트 시장 재임
1973년 선거와 취임
1973년 영은 디트로이트 시장 선거에 출마하였다. 당시 디트로이트 인구의 거의 절반이 흑인이었으나 경찰국은 대부분 백인으로 구성되어 있었고, 흑인 주민들에 대한 경찰 폭력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쟁점이었다. 영은 경찰의 과잉 진압 부대인 STRESS(Stop the Robberies and Enjoy Safe Streets)의 해체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1973년 11월 선거에서 영은 경찰청장 존 니콜스를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디트로이트 최초의 흑인 시장으로 당선되었다.
시장으로서의 주요 업적
영은 취임 직후 STRESS 부대를 해체하고 경찰국의 인종적 다양성 확대를 추진하였다. 경찰국 내 흑인 비율은 1974년 10% 미만에서 1993년 50% 이상으로 증가하였다. 또한 공동체 치안(community policing)을 도입하고 이웃 시청과 경찰 파출소를 설치하였다.
경제 개발 측면에서 영은 조 루이스 아레나, 르네상스 센터, 디트로이트 피플 무버, 폭스 극장 복원 등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를 추진하였다. 제너럴 모터스의 폴레타운 공장과 크라이슬러의 제퍼슨 노스 조립 공장 등 주요 기업의 공장을 도시 내에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1981년에는 전미 유색인 지위 향상 협회(NAACP)로부터 스핑건 메달을 수상하였다.
재임 기간의 도전과 논란
영의 재임 기간은 미국 자동차 산업의 쇠퇴, 경제 불황, 제조업 일자리 감소 등 광범위한 사회경제적 어려움과 겹쳤다. 디트로이트는 그의 재임 기간 동안 약 3분의 1에 해당하는 인구를 잃었다. 1980년대에는 살인율이 크게 증가하여 1987년 인구 10만 명당 63.5명으로 정점에 달하였다.
영의 행정부에 대해서는 여섯 차례의 연방 조사가 이루어졌으며, 그의 측근 중 일부가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영 본인은 기소되거나 유죄 판결을 받은 적이 없다. 2000년 정보자유법에 따라 공개된 문서에 따르면, FBI는 1940년대부터 영의 공산당 연루 가능성을 의심하여 수십 년간 그를 감시하였다.
사망과 유산
영은 1997년 11월 29일 폐기종으로 사망하였다. 사후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그를 "우리나라가 알던 가장 위대한 시장 중 하나"라고 평가하였다.
그의 유산으로는 디트로이트 시청사 건물이 1999년 콜먼 A. 영 지방자치단체 청사로 개명되었고, 디트로이트 시 공항이 2003년 콜먼 A. 영 국제공항으로 개명되었다. 2022년 미시간주 입법부는 미국 국회의사당 국립 조각상 홀 컬렉션에서 루이스 캐스의 동상을 영의 동상으로 교체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는 디트로이트의 엘름우드 묘지에 안장되었다.
평가
영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지지자들은 그가 경찰국 개혁, 경제 개발, 인종 통합에 기여한 점을 강조한다. 반면 비판자들은 그의 재임 기간 동안 도시의 인구 감소와 범죄율 상승, 경제 악화를 지적한다. 1993년 일리노이대학 시카고캠퍼스의 멜빈 G. 홀리가 실시한 미국 대도시 시장 평가 설문에서 영은 1820년부터 1993년까지 재임한 시장들 중 12번째로 나쁜 시장으로 평가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디트로이트의 인구 감소와 경제 악화에는 백인 이탈, 자동차 산업 쇠퇴, 1967년 인종 폭동의 여파 등 영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구조적 요인들이 작용하였다는 점도 지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