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먼 린지(Coleman Lindsey, 본명: 아이작 콜먼 린지, Isaac Coleman Lindsey, 1892년 10월 2일 ~ 1968년 11월 15일)는 미국 루이지애나주의 정치인이자 법조인이다. 그는 루이지애나주 상원의원과 제39대 루이지애나주 부지사를 역임하였다.
린지는 1892년 루이지애나주 남서부의 앨런 패리시(당시 캘커수 패리시) 드라이크릭에서 태어났다. 그는 농장에서 성장했으며, 외조부모인 아이작 해밀턴 목사 부부에 의해 양육되었다. 오크데일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한동안 교사로 활동했고, 이후 루이지애나주립대학교에서 법학 학위를 받았다. 1921년에는 앨런 패리시를 대표하여 루이지애나주 헌법 회의에 참석하였다.
1922년 웹스터 패리시의 민든으로 이주하여 변호사로 활동하기 시작한 린지는 1924년 보시어 패리시와 웹스터 패리시를 관할 구역으로 하는 루이지애나주 상원의원으로 당선되었다. 그는 1924년부터 1928년까지, 그리고 1932년부터 1940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상원의원을 지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롱(Long) 파벌에 소속되어 활동했으며, 상원에서 보건·검역·배수·자선 기관 위원회 위원장과 은행 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1939년 여름, 스캔들에 연루된 리처드 W. 레시 주지사의 사임으로 얼 롱 부지사가 주지사로 승격되면서, 린지는 상원의장 자격으로 루이지애나주 부지사에 올랐다. 그는 1939년 6월부터 1940년 5월까지 부지사직을 수행하였다. 1930년에는 민든 시장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한 바 있다.
부지사 임기를 마친 후 린지는 민든에서 변호사 활동을 재개했고, 이후 배턴루즈로 이주하였다. 1950년부터는 제19 사법구역 판사로 임명되어 생애 마지막까지 재직하였으며, 1960년부터 1968년까지는 수석 판사를 맡았다. 그는 《The Courts of Louisiana》를 비롯한 여러 학술 저술을 남기기도 했다.
린지는 침례교 신자였으며, 나이트 템플러(Knights Templar)와 프리메이슨, 슈라이너스 등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그는 1914년 코라 헤링과 결혼하여 다섯 아들을 두었다. 1968년 배턴루즈에서 76세의 나이로 사망하였으며, 배턴루즈의 레스트헤이븐 묘소에 안장되었다.
참고로, 출생일과 사망일에 대해서는 일부 자료에 차이가 있다. 한국어 위키백과는 출생일을 1892년 10월 12일로, 영어 위키백과는 사망일을 1968년 11월 7일로 기록하고 있으나, 다수의 상세 자료는 출생일을 1892년 10월 2일, 사망일을 1968년 11월 15일로 제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