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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티스 팔라마스

코스티스 팔라마스(Kostis Palamas, 그리스어: Κωστής Παλαμάς, 1859년 1월 13일~1943년 2월 27일)는 그리스의 시인이다. 그는 올림픽 찬가(Olympic Hymn)의 가사를 쓴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팔라마스는 그리스 파트라스(Patras)에서 태어나 메솔롱기(Mesolonghi)에서 초·중등 교육을 받았다. 1877년 아테네 대학교 법학·경제·정치학부에 입학하였으나 학업을 중단하였고, 1880년대부터 언론인으로 활동하였다. 1886년 첫 시집 《조국의 노래》(Songs of My Fatherland)를 출간하였다.

그는 1880년대 그리스 문학 세대의 중심 인물이었으며, 게오르기오스 드로시니스(Georgios Drosinis), 이오아니스 폴레미스(Ioannis Polemis)와 함께 이른바 '신아테네 학파'(New Athenian School, 또는 팔라마스 학파·제2아테네 학파)의 공동 창립자 중 한 명이다. 1897년부터 1926년까지 아테네 대학교에서 행정직을 역임하였다.

팔라마스는 생애 동안 총 14회 노벨 문학상 후보로 지명되었으나 수상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의 가장 대표적인 작품은 스피리돈 사마라스(Spyridon Samaras)가 작곡한 올림픽 찬가의 가사이다. 이 곡은 1896년 제1회 아테네 하계 올림픽에서 초연되었으며, 이후 1958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공식 올림픽 찬가로 지정되어 1960년 스쿼밸리 동계 올림픽부터 현재까지 모든 올림픽 대회에서 연주되고 있다.

주요 시집으로는 《나의 영혼의 눈》(Eyes of My Soul, 1892), 《약강격과 아나페스트》(Iambs and Anapaests, 1897), 《움직이지 않는 삶》(The Motionless Life, 1904), 《집시의 12편의 노래》(Twelve Lays of the Gypsy, 1907), 《왕의 피리》(The King's Flute, 1910) 등이 있다. 소설 《한 청년의 죽음》(Death of a Youth, 1901)과 희곡 《세 번 고귀한 자》(The Thrice-noble, 1903)도 집필하였다.

팔라마스는 1943년 2월 27일 제2차 세계대전 중 추축국 점령 하의 아테네에서 사망하였다. 그의 장례식은 그리스 저항 운동의 상징적 사건이 되었으며, 수천 명의 시민이 자발적으로 참석하여 점령군에 대한 대규모 저항 시위로 이어졌다. 그는 그리스의 '민족 시인'으로 비공식적으로 불리며, 30년 이상 그리스 문학과 당대 정치·지적 풍토에 큰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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