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뿔소(Rhinocéros)는 루마니아 태생의 프랑스 극작가 외젠 이오네스코(Eugène Ionesco, 1912~1994)가 쓴 희곡이다. 1959년에 집필되어 같은 해 11월 1일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세계 초연되었으며, 1960년 1월 25일 파리 오데옹 극장에서 프랑스 초연이 이루어졌다. 이 작품은 마르틴 에슬린이 정리한 '부조리극(The Theatre of the Absurd)'의 대표작으로 꼽히며, 이오네스코의 이름을 세계적으로 알리게 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구성과 줄거리
총 3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프랑스의 작은 지방 도시를 배경으로, 정장을 갖춘 현실적이고 지적인 장(Jean)과 술을 좋아하고 정돈되지 않은 생활을 하는 온순한 인물 베랑제(Bérenger)라는 두 친구의 이야기가 중심이 된다.
- 1막: 도시 광장에서 코뿔소가 갑자기 등장하여 주민들을 놀라게 한다. 이어 두 번째 코뿔소가 나타나 한 여성의 고양이를 짓밟아 죽인다. 이후 신문사 사무실에서도 직원들의 배우자가 코뿔소로 변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 2막: 병에 걸린 장을 찾아간 베랑제는 장과 다투다 장이 점차 코뿔소로 변하는 모습을 목격한다. 장은 마지막에 "인본주의는 죽었다"고 외치며 완전히 코뿔소로 변신한 뒤 베랑제를 쫓아낸다.
- 3막: 베랑제의 집에 듀다르(Dudard)와 데이지(Daisy)가 방문한다. 여러 마을 주민들이 차례로 코뿔소로 변해 가는 가운데, 베랑제를 사랑하는 데이지마저 결국 코뿔소의 세계로 떠나간다. 마지막에 혼자가 된 베랑제는 자신도 코뿔소가 되기를 시도하지만 그럴 수 없음을 깨닫고,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며 저항하겠다는 결의를 다진다.
주제와 해석
이 작품은 사람이 갑자기 코뿔소로 변해 가는 '코뿔소병(rhinocérite)'이라는 가상의 현상을 소재로 한다. 이는 인간의 비합리성과 집단적 히스테리, 획일화와 동조를 상징하는 것으로 널리 해석된다. 작품은 제2차 세계대전 전후의 파시즘과 나치즘의 부상, 집단주의의 위험성에 대한 비판으로 읽히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오네스코 본인은 이 작품에 대해 자신이 젊은 시절 루마니아에서 겪은 경험, 특히 파시스트 조직 '철위대(鐵衛隊, Iron Guard)'에 지식인 친구들이 하나씩 빠져들던 상황에 대한 반응이라고 여러 차례 밝혔다. 미국 학자 앤 퀴니(Anne Quinney) 등은 이 작품이 이오네스코의 자전적 요소를 반영한 알레고리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또한 작품은 파시즘·나치즘뿐 아니라 스탈린주의와 프랑스 지식인 사회의 동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점령 하 프랑스의 점진적 순응 등을 함께 풍자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주요 등장인물
- 베랑제(Bérenger): 주인공. 술과 여가를 즐기며 정돈되지 않은 생활을 하는 평범한 인간으로, 작품 말미 최후까지 인간으로 남는 인물.
- 장(Jean): 베랑제의 친구. 지적이고 엄격한 성격으로, 2막에서 코뿔소로 변신.
- 데이지(Daisy): 신문사 접수원으로 베랑제가 사랑하는 인물. 결국 코뿔소로 변함.
- 듀다르(Dudard): 파이프를 피우는 지성인으로, 이오네스코가 사르트르를 풍자한 인물로 밝힌 바 있음.
- 보타르(Botard): 좌파적 구호를 구사하는 인물로 프랑스 공산주의 지식인을 풍자한 것으로 해석됨.
- 논리학자(Logician): 실로기즘(삼단논법)에 집착하는 인물.
공연과 각색
이 작품은 1959년 뒤셀도르프 초연 이후 1960년 런던 로열 코트 극장(오손 웰스 연출, 로렌스 올리비에 주연), 1961년 브로드웨이 롱에이커 극장(엘리 월라크, 제로 모스텔 주연) 등에서 공연되었다. 제로 모스텔은 장 역으로 1961년 토니상을 수상했다. 이후 1973년에는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으며(톰 오호건 연출, 진 와일더, 제로 모스텔 출연), 여러 차례 재공연과 각색이 이루어졌다.
한국에서의 소개
한국에서는 오증자 등에 의해 번역 소개되었으며, 국내 여러 극단에 의해 공연된 바 있다. 한국어판 번역본은 다수의 출판사에서 간행되었다.
연관 개념
'hitkarnefut'(코뿔소화, rhinocerization)라는 용어는 이 작품에서 유래하여, 집단적 광기나 민족주의적 열광에 휩쓸리는 현상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 개념은 이스라엘에서 희곡 비평가 아셰르 나호르가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후 아모스 오즈 등에 의해 널리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