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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티 1세

케티 1세는 고대 이집트 제9왕조의 파라오(왕)이다. 이집트 제9왕조의 건국자로, 헬레니즘 시대의 이집트 역사가 마네토(Manetho)의 기록에는 '아치토에스'(Achthoes)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그의 본명인 '케티'(Khety)는 이집트어로 '케티' 또는 '헤티'로 음역되며, 즉위명(왕명, nomen)은 '와카레'(Wahkare)로 알려져 있다.

케티 1세는 본래 이집트 제8왕조에서 상이집트(Upper Egypt) 지역으로 파견된 왕자 또는 총독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중앙 정부의 권위가 약화되자 이를 기회로 삼아 헤라클레오폴리스(Heracleopolis, 현재의 이티야트 알라문 / Ihnasya el-Medina)를 수도로 삼아 새로운 왕조를 개창하였다. 이 시기는 이집트 고왕국(Old Kingdom)이 붕괴하고 지방 분권화가 심화된 제1중간기(First Intermediate Period, 약 기원전 2160년~기원전 2055년)에 해당한다.

마네토의 기록에 따르면, 케티 1세는 역대 파라오 중에서도 가장 포악하고 잔인한 통치자로 묘사된다. 그의 폭정으로 인해 민심을 잃었고, 결국 대규모 반란이 일어나 반란군에게 사로잡혀 악어에게 물어뜯겨 사망했다는 전승이 전해진다. 다만 이는 마네토의 기록에 근거한 것으로, 역사적 사실 여부는 불확실하다.

케티 1세와 관련된 유물은 매우 적게 남아 있다. 아비도스(Abydos) 근처의 한 무덤에서 발견된 구리 바구니, 메이르(Meir)에서 출토된 흑단 지팡이, 리슈트(Lisht)에서 발견된 상아 재질의 상자 조각 등이 대표적이다. 이러한 유물들에는 케티 1세의 왕호가 새겨져 있다. 토리노 파피루스(Turin Papyrus)에서는 그의 이름이 누락된 것으로 보이나, 원래는 특정 위치(4-18 또는 4-19)에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이 있다.

제9왕조의 파라오는 총 19명이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나, 이름이 후세까지 전해진 것은 케티 1세, 네페르카레 7세(Neferkare VII), 네브카우레 케티(Nebkaure Khety), 세투트(Setut) 단 4명뿐이다. 케티 1세의 정확한 재위 기간과 사망 연도는 고대 기록의 부족으로 확인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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