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캘빈 쿨리지 주니어(영어: John Calvin Coolidge, Jr., 1872년 7월 4일 ~ 1933년 1월 5일)는 미국의 제30대 대통령(1923년~1929년 재임)이다. 공화당 소속의 변호사 출신으로 매사추세츠주 출신이다.
1872년 7월 4일 미국 독립기념일에 버몬트주 플리머스에서 태어났으며, 이는 미국 대통령 중 유일하게 독립기념일에 태어난 사례이다. 애머스트 대학교를 졸업하고 매사추세츠주 노샘프턴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정계에 입문하였다. 노샘프턴 시의원(1899년), 시 법률고문(1900년~1902년), 시장(1910년~1911년), 매사추세츠주 상원의원(1912년~1915년), 부주지사(1916년~1918년)를 거쳐 1919년부터 1921년까지 매사추세츠주 제48대 주지사를 지냈다.
주지사 재임 중이던 1919년 보스턴 경찰 파업을 강력하게 진압하면서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이후 1920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워런 G. 하딩의 러닝메이트로 부통령 후보에 지명되어 당선되었으며, 1921년부터 1923년까지 제29대 부통령을 역임하였다. 1923년 8월 2일 하딩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쿨리지는 대통령직을 승계하였고, 1924년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하여 1929년까지 대통령으로 재임하였다.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쿨리지는 하딩 행정부의 각종 스캔들 이후 백악관의 대중적 신뢰를 회복하는 데 기여했다. 그의 행정부는 감세와 연방 지출 축소를 통해 국가 부채를 줄이는 데 주력하였으며, 1920년대 미국 경제 호황기('광란의 20년대')에 소규모 정부와 자유방임적 경제 정책을 유지하였다. 1924년 인디언 시민권법에 서명하여 모든 아메리카 원주민에게 미국 시민권을 부여하였고, 같은 해 이민법에도 서명하였다. 외교적으로는 1928년 켈로그-브리앙 조약을 체결하여 전쟁 포기를 국제적 원칙으로 선언하는 데 기여하였다.
쿨리지는 과묵하고 절제된 성격으로 유명하여 '침묵의 캘'(Silent Cal)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의 대표적인 명언으로 "미국의 비즈니스는 비즈니스다(The chief business of the American people is business)"가 있다. 1928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선언하였고, 임기 종료 후 매사추세츠주 노샘프턴으로 은퇴하였다. 1929년 자서전을 출간하였고, 1930년부터 1931년까지 신문 칼럼 '캘빈 쿨리지가 말한다'를 연재하였다.
1933년 1월 5일 노샘프턴의 자택에서 관상동맥 혈전증으로 60세의 나이에 사망하였다. 그의 경제 정책과 소극적 통치 방식에 대해서는 오늘날까지도 학자들 사이에 평가가 엇갈리며, 일부에서는 그의 정책이 대공황의 원인에 일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 반면 작은 정부와 재정 건전성을 중시한 그의 통치 방식은 현대 보수주의자들 사이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다.